임용고시 서브노트/동양윤리

동양윤리 (2) 맹자

neon_eidos 2024. 1. 14. 21:56

임용 기출▶교과서 5종(천재, 비상, 미래엔, 교학사, 씨마스)▶현자의 돌 선생님, Hamartia 선생님의 지문 모음 파일(도교사 카페에 있음. 감사합니다)▶합격자 서브노트 + 2024 김병찬 교수의 서양.동양.한국윤리: 중등임용 시험대비』

+ 『맹자』(동양고전종합DB), 『맹자』(박경환 역, 홍익출판사) 참고

 

1. 인·의의 우선성

"왕께서는 어째서 이익만을 말하십니까? 인(仁)과 의(義)가 중요할 뿐입니다. 왕이 ‘어떻게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라고 궁리하면 대부는 ‘어떻게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를 궁리합니다. 선비와 서민들은 ‘어떻게 하면 내 한 몸을 이롭게 할까?’를 궁리합니다. 이처럼 위아래가 서로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면 나라는 위태로워집니다. (양혜왕 상 1)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생선 요리도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이고, 곰발바닥 요리도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이지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먹을 수 없다면, 생선 요리를 버리고 곰발바닥 요리를 취하겠다. 사는 것도 내가 원하는 바이고 의(義)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 없다면, 사는 것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舍生取義]. 사는 것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사는 것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삶을 구차히 얻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도 내가 싫어하는 바이지만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환난을 피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원하는 것 중에 사는 것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없다면, 삶을 얻을 수 있는 경우에 있어서는 무슨 방법인들 쓰지 않겠으며, 만약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 중에 죽는 것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없다면, 환난을 피할 수 있는 경우에 무슨 짓인들 하지 않겠는가? 사는 것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살 수 있는데도 그 방법을 쓰지 않는 경우가 있다. 죽는 것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화를 피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사는 것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으며, 죽는 것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 오직 현자만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현자는 이것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 뿐이다. 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一簞食一豆羹]을 얻으면 살고 얻지 못하면 죽더라도, 혀를 차고 꾸짖으면서 주면 길 가는 사람도 받지 않으며, 발로 차서 주면 걸인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만종(萬鍾)의 많은 녹(祿)은 예의를 분별하지 않고 받으니, 만종의 녹이 나에게 무슨 보탬이 있는가? 호화스러운 집과 나를 받들어줄 처첩과, 내가 알고 있는 궁핍한 자들이 나의 은혜를 고맙게 여기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전에 자신을 위해서는 죽어도 받지 않다가 이제 호화로운 집을 위해서는 받으며, 전에 자신을 위해서는 죽어도 받지 않다가 이제 처첩이 받들어주는 것을 위해서는 받으며, 전에 자신을 위해서는 죽어도 받지 않다가 이제 내가 알고 있는 궁핍한 자가 나의 은혜를 고맙게 여기게 하기 위해서는 받으니, 이것 또한 그만둘 수 없는가? 이것을 일러 ‘그 본래의 마음을 잃었다.’고 하는 것이다.” (고자 상 10)

맹자의 제자 도응이 물었다. “순임금께서 천자가 되시고, 고요가 사(士)가 되었을 경우, 순임금의 아버지 고수가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고요는 법대로 집행했을 것이네.” “그렇다면 순임금께서는 말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순임금께서 어떻게 말릴 수 있겠는가? 고요의 법은 전수받은 바가 있으니, 비록 천자의 명령이라도 폐할 수가 없네.” “그렇다면 순임금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순임금께서는 천하를 버리는 것을 마치 헌신짝을 버리듯이 여기시어, 몰래 아버지를 업고 도망하여 바닷가에 살면서 종신토록 즐거워하면서 천하를 잊으셨을 것이네.” (진심 상 35)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무명지가 구부러져서 펴지지 않는 것이 아프거나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 이것을 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진(秦)나라와 초(楚)나라의 길을 멀다 여기지 않고 찾아가니, 이는 손가락이 남들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남들과 같지 않으면 싫어할 줄 알면서도, 마음이 남들과 같지 않은 것은 싫어할 줄 모르니, 이것을 일러 일의 경중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고자 상 12)

 

2. 성선설

1)  사단, 불인인지심, 양지·양능

  •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차마 그대로 보아 넘기지 못하는 선한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음
  • 사람은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있는 네 가지 마음의 단서(사단)를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음: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 옳지 못한 일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羞惡之心], 겸손하고 양보하는 마음[辭讓之心],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마음[是非之心].
  • 성선설의 근거로 유자입정 제시: 물에 빠진 아이에 대해 외적 고려가 아닌 측은지심이라는 자연스러운 본성의 즉각적 발현임
  • 사단은 각각 인, 의, 예, 지의 사덕을 실현할 수 있는 실마리임.
  • 사단을 잘 함양하고 확충하면 누구나 사덕을 완성하고 성인이 될 수 있음: 성선설은 도덕의 성립 근거, 왕도정치의 가능 근거임.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남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 있다. 선왕께서는 남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을 가지시고 곧 남에게 차마 못하는 정치를 하셨다. 남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에게 차마 못하는 정치를 하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 위에 놓고 움직이는 것처럼 쉬울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남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근거는 이러하다. 지금 어떤 사람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고 측은해하는 마음이 드니, 이렇게 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해서도 아니며, 그렇게 함으로써 고을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그런 어린아이를 구하지 않았을 경우에 듣게 될 비난을 싫어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지심은 인(仁)의 단서이고, 수오지심은 의(義)의 단서이고, 사양지심은 예(禮)의 단서이며, 시비지심은 지(智)의 단서이다. 사람이 이 네 가지 단서인 사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으니, 이 사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자신을 해치는 자이고, 자기 임금이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자기 임금을 해치는 자이다.
   무릇 나에게 있는 사단을 모두 넓혀서 채워나갈 줄 알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며 샘물이 처음 나오는 것과 같아서, 처음에는 미미하지만 끝에 가서는 기세가 대단할 것이다. 진실로 이것을 확충(擴充)시킨다면 온 천하도 보호할 수 있겠지만, 진실로 이것을 확충시키지 못한다면 부모조차도 섬길 수 없을 것이다.” (공손추 상 6)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차마 하는 것에까지 확충시킨다면 그것이 인(仁)이다. 사람들은 모두 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하는 데에까지 확충시킨다면 그것이 의(義)이다. 사람이 남을 해치려고 하지 않는 마음을 확충시킬 수 있다면 인을 이루 다 쓰지 못할 것이며, 사람이 담을 뚫거나 넘어가서 도둑질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확충시킬 수 있다면 의를 이루 다 쓰지 못할 것이다. ... (진심 하 31)

자신을 해치는 자와는 함께 도(道)를 말할 수 없고, 자신을 버리는 자와는 함께 도를 행할 수 없다. 말할 때마다 예의(禮義)를 비방하는 것을 일러 자신을 해치는 ‘자포(自暴)’라 하고, 나는 인(仁)을 행하거나 의(義)를 따를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을 일러 자신을 버리는 ‘자기(自棄)’라고 한다.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고, 의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 편안한 집을 비워두고 거처하지 않으며, 바른 길을 버려두고 따르지 않으니, 애처롭다. (이루 상 10)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대인은 어린아이의 마음[赤子之心]을 잃지 않은 자이다.” (이루 하 12)

 

  • 양지·양능: 선천적 도덕 자각 능력, 선천적 도덕 실천 능력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은 양능(良能)이요,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양지(良知)이다. 두세 살 먹은 아이라도 그 어버이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가 없으며, 장성해서는 그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가 없다. 어버이를 친애함은 인(仁)이고, 어른을 공경함은 의(義)이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온 천하 사람들 누구나 인과 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심 상 15)

 

  • 금수와의 차이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과 금수의 차이는 작은데, 많은 사람들은 이 차이를 버리고 군자는 이 차이를 보존한다. 순(舜)임금은 사물의 이치에 밝으시며 사람의 도리를 더 잘 아셨으니, 이는 마음속의 인의를 따라 행하신 것이지 마음 밖의 인의를 행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다.” (이루 하 19)

 

  • 무엇을 본성이라고 여길 것인가, 무엇이 중한가
입이 좋은 맛을, 눈이 좋은 색을, 귀가 좋은 소리를, 코가 좋은 냄새를, 사지가 안일함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性]에 속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명(命)에 달린 것이므로 군자는 그것을 본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부자간의 인(仁)과, 군신간의 의(義)와, 주인과 손님 간의 예(禮)와, 현자의 지혜[智]와, 성인의 천도(天道)는 모두 명이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본성에 달려 있으므로 군자는 그것을 천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진심 하 24)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것은 비록 자신의 도가 세상에 크게 행해지더라도 더 늘어나지 않고, 비록 곤궁하게 지내더라도 더 줄어들지 않으니, 분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것은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마음속에 뿌리박고 있어서 그것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 환하고 깨끗하게 얼굴에 나타나고 등에 가득하며 사지(四肢)에 퍼져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지가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 (진심 상 21)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자기 몸에 대해서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구별 없이 사랑하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구별 없이 사랑한다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구별 없이 기른다. 한 자와 한 치의 살갗도 사랑하지 않음이 없으면, 한 자와 한 치의 살갗도 기르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자신의 몸을 잘 기르는지 잘못 기르는지 살피는 방법은 어찌 다른 데 있겠는가? 자기에게서 취할 뿐이다.
   몸에는 귀한 것과 천한 것이 있으며 작은 것과 큰 것이 있으니,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을 해치지 말며, 천한 것을 가지고 귀한 것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 작은 것을 기르는 자는 소인(小人)이 되고, 큰 것을 기르는 자는 대인(大人)이 된다. 지금 원예사가 오동나무와 가래나무를 놓아두고 가시나무를 기른다면, 쓸모없는 원예사라고 할 것이다. 자신의 손가락 하나만 기르고 어깨와 등을 잃으면서도 알지 못한다면, 이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다. 음식을 밝히는 사람을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니, 작은 것을 기르고 큰 것을 잃기 때문이다. 음식을 밝히는 사람이 입과 배를 기르면서도 큰 것을 기름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입으로 먹고 배로 소화시키는 것이 어찌 다만 한 자나 한 치의 살갗이 될 뿐이겠는가?” (고자 상 14) 

공도자(公都子)가 여쭈었다. “똑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대인이 되고, 어떤 사람은 소인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대체(大體)인 심지(心志)를 따르는 사람은 대인이 되고, 소체(小體)인 이목(耳目)을 따르는 사람은 소인이 되네.” “똑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대체를 따르고, 어떤 사람은 소체를 따르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귀와 눈의 기능은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건에 가려지니, 외물(外物)이 생각하지 못하여 한 물건에 불과한 귀와 눈에 접촉하면 귀와 눈은 외물에게 끌려갈 뿐이네.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얻지 못하네. 이는 하늘이 우리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니, 먼저 그 큰 것인 심지(心志)을 세우면 그 작은 것인 이목(耳目)이 빼앗지 못할 것이네. 이것이 대인이 되는 것일 따름이네.” (고자 상 15) 

 

2) 불선의 근원

  • 사람은 본래 선하지만 외부 환경과 감각적 욕구 때문에 불선해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풍년에는 자제(子弟)들이 대부분 선해지고, 흉년에는 자제들이 대부분 포악해지니, 타고난 재질이 그처럼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빠뜨리는 것[陷溺]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보리를 파종하고 씨앗을 덮되, 그 땅이 똑같으며 심는 시기가 똑같으면, 싹이 나와서 익을 때가 되면 모두 익으니, 비록 같지 않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이는 땅에 비옥하고 척박함이 있고, 비와 이슬이 길러줌과 사람이 가꾸는 일이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릇 종류[類]가 같은 것은 모두 서로 비슷하니, 어찌 단지 사람의 경우에 이르러서만 그렇지 않다고 의심을 하겠는가? 성인(聖人)도 나와 같은 부류(部類)이다. 그러므로 옛 현인 용자(龍子)가 말하기를 ‘발의 크기를 모르고 신을 만들더라도 나는 그것이 삼태기가 되지 않으리란 것을 안다.’ 하였으니, 신이 서로 비슷한 것은 천하 사람의 발이 같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말하기를 ‘사람들의 입은 똑같이 즐기는 맛이 있으며, 사람들의 귀는 똑같이 듣기 좋은 소리가 있으며, 사람들의 눈은 똑같이 아름답게 여기는 색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마음에 이르러서만 유독 똑같이 그렇게 여기는 바가 없겠는가? 사람들의 마음이 다같이 그렇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이(理)와 의(義)를 이른다. 성인은 우리 마음에 똑같이 그렇게 여기는 바를 먼저 아셨다. 그러므로 이와 의가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고기가 내 입을 기쁘게 하는 것과 같다.” (고자 상 7)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우산(牛山)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다웠는데, 그것이 큰 나라의 근교에 있어서 도끼와 자귀로 베어내니, 어떻게 아름답게 될 수 있겠는가? 낮과 밤에 자라나는 것과 비와 이슬이 적셔주어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소와 양을 또 방목하므로 이 때문에 저와 같이 벌거벗게 된 것인데, 사람들은 그 벌거벗은 것만을 보고는 일찍이 재목이 있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이것이 어찌 산(山)의 본래 성질이겠는가?
   비록 사람에게 있는 것이라 한들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겠는가마는, 그 양심(良心)을 잃어버리는 것이 또한 도끼와 자귀로 아침마다 나무를 베는 것과 같으니, 이렇게 하고서 아름답게 될 수 있겠는가? 그 낮과 밤에 자라난 양심과 새벽의 맑은 기운도, 그 좋아하고 미워함이 다른 사람들과 서로 비슷한 것이 거의 드문데, 낮에 하는 불선한 행동이 이것을 없애니, 없애기를 반복하면 밤에 자란 선한 기운인 야기(夜氣)도 보존될 수 없고, 야기가 보존될 수 없으면 금수(禽獸)와 다른 것이 많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금수와 같은 모습만을 보고서 일찍이 훌륭한 재질이 있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본래 모습이겠는가?
   그러므로 진실로 잘 길러주면 물건마다 자라지 않는 것이 없고, 진실로 잘 길러주지 않으면 물건마다 소멸하지 않는 것이 없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없어져서[操則存 舍則亡] 나가고 들어옴이 일정한 때가 없으며[出入無時], 어디로 갈지 그 방향을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을 두고 말한 것이다.’ 하셨다.” (고자 상 8)
  • 야기(夜氣): 사물과의 접촉이 없는 밤중에 물욕이나 망상이 일어나지 않은 평온하고 맑은 기상

 

3) 고자와의 논쟁

  • 고자는 식욕과 성욕이 인간의 본성이며, 인간의 본성이 선 또는 악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성무선악설을 제시함. 사람의 선하거나 악함은 후천적으로 정해짐.
  • 맹자는 인간은 선한 본성을 타고나며, 악한 사람도 후천적으로 그렇게 되었을 뿐이라고 봄.
  • (1) 인의는 본성을 해쳐서 얻어지는 것일 수 없음
고자가 말하였다. “사람의 본성은 버드나무와 같고, 의(義)는 버드나무로 만든 그릇과 같으니, 사람의 본성을 가지고 인의(仁義)를 행하는 것은 버드나무를 가지고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버드나무의 본성을 그대로 따라서 그릇을 만듭니까? 반드시 버드나무를 구부리고 해친 뒤에야 그릇을 만들 것이니, 만일 버드나무를 구부리고 해쳐서 그릇을 만든다면, 또한 장차 사람을 해쳐서 인의를 행한다는 것입니까? 천하 사람을 거느리고서 인의를 해치게 하는 것은 반드시 그대의 말일 것입니다.” (고자 상 1)

 

  • (2) 사람은 본성적으로 선을 향하지만 외부적 힘의 영향으로 후천적으로 불선해지기도 하는 것
고자가 말하였다. “사람의 본성(性)은 소용돌이치는 물과 같아서, 동쪽으로 터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놓으면 서쪽으로 흐릅니다. 사람의 성이 선(善)과 불선(不善)의 구분이 없는 것은, 물이 동쪽과 서쪽의 구분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물은 진실로 동서(東西)의 구분이 없지만, 상하(上下)의 구분도 없습니까? 사람의 성이 선함은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 같으니,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물은 낮은 데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 물을 쳐서 튀어 오르게 하면 사람의 이마보다 높이 올라가게 할 수 있고, 물을 막아서 거슬러 올라가게 하면 산에 있게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어찌 물의 본성이겠습니까? 외부에서 가하는 힘이 그렇게 만든 것이니, 사람이 불선을 하게 되는 것도 이처럼 그 성이 외부의 힘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고자 상 2)

 

  • (3) 타고난 것을 성이라고 한다 vs.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것은 본성의 선함이다.
고자가 말하였다. “생리적인 본능을 성(性)이라고 합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생리적인 본능을 성이라고 하는 것은, 흰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흰 깃털의 흰 것이 흰 눈의 흰 것과 같고, 흰 눈의 흰 것이 흰 옥(玉)의 흰 것과 같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개의 성이 소의 성과 같으며, 소의 성이 사람의 성과 같단 말입니까?” (고자 상 3)

 

  • (4) [의는 외부 대상에 있음 vs 대상에 대한 내부의 마음에 있음]
고자가 말하였다. “식욕과 색욕이 성(性)이니, 인(仁)은 안에 있는 것이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며, 의(義)는 에 있는 것이지 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인은 안에 있는 것이고, 의는 밖에 있는 것이라고 이릅니까?” 고자가 말하였다. “어른을 공경할 경우에 그가 어른이어서 내가 그를 어른으로 공경하는 것입니다. 어른을 공경하는 존경심이 나에게 있어서가 아닙니다[彼長而我長之 非有長於我也]. 흰 물건을 희다고 할 경우에 그것이 희어서 내가 그것을 희다고 하여, 외면에서 그 흰 것을 따라 내가 그것을 희다고 인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의는 밖에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말[馬]이 흰 것을 희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흰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거니와, 모르겠습니다만 말이 나이가 많은 것을 나이가 많다고 여기는 것이, 사람이 나이가 많은 것을 나이가 많다고 여기는 것과 차이가 없겠습니까? 또한 나이가 많은 것을 의라고 합니까? 나이가 많은 자를 공경하는 것을 의로운 것이라고 합니까?”
   고자가 말하였다. “내 아우이면 사랑하고, 나와 상관없는 진(秦)나라 사람의 아우이면 사랑하지 않으니, 이는 나를 위주로 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을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초(楚)나라 사람 중에서 나이 많은 이도 어른 대접하고, 또한 내 어른도 어른 대접하니, 이는 나이가 많은 것을 위주로 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는 밖에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진(秦)나라 사람이 만든 불고기를 좋아하는 것이 내가 만든 불고기를 좋아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니, 물건의 경우에도 그러한 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고기를 좋아하는 것 또한 밖에 있단 말입니까?” (고자 상 4)

 

3. 수양론

  • 사단은 선의 단서일 뿐, 후천적 환경이나 감각기관의 영향에 의해 온전하게 발현되지 못할 수 있음. 따라서 수양을 통한 존심양성 내지 사단의 확충이 필요함. 수양론과 관련하여 맹자는 잃어버린 마음을 찾을 것[求放心], 욕망을 적게 할 것[寡欲],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상태[不動心]를 확보할 것, 호연지기를 기를 것 등을 제안함.
  • 존심양성: 선한 본심을 보존하고 선한 본성을 기름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義)는 사람의 길이다[仁人心也 義人路也]. 그 길을 버려두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을 모르니, 안타깝다. 사람이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을 알지만,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의 길이란 다른 것이 없다.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求放心] 것일 뿐이다.” (고자 상 11)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을 기르는 데는 욕심을 줄이는 것[寡欲]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욕심이 적은 사람이라면 마음을 보존하지 못한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드물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마음을 보존한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역시 드물다.”(진심 하 35)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마음을 다 실천하는[盡其心] 자는 마음의 근원인 성(性)을 알 수 있으니, 그 을 알면 더 나아가서 의 근원인 하늘을 알 수 있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보존하여 그 성을 기름[存心養性]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요, 요절하거나 장수하거나 하는 것에 의심하지 않고 몸을 닦아 천명(天命)을 기다리는 것은 명(命)을 세우는 것이다.” (진심 상 1)

 

  • 호연지기: 지극히 크고 강한 도덕적 기개. 천지에 가득 차는 정기로, 의로운 일을 꾸준히 실천하여 쌓아야 생김.
  • 대장부: 인의예지에 기거하며, 부귀나 무력, 결과적 성패에 굴하지 않고 오직 도리를 다하는 인간.
(...) “감히 여쭙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무슨 장점이 있으십니까?” “나는 남의 말을 잘 알며, 나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르네.”
   “감히 여쭙겠습니다. 무엇을 호연지기라 합니까?” “말하기 어렵네. 이 호연지기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니[至大至剛], 정직함으로써 기르고 해침이 없으면 이 호연지기가 천지(天地) 사이에 꽉 차게 되네. 이 호연지기는 의(義)와 도(道)에 짝이 되니, 이것이 없으면 위축되네. 이 호연지기는 의를 많이 축적하여 생겨나는 것이지, 나의 어떤 행위가 우연히 한 번 의에 부합되었다고 해서 취해지는 것이 아닐세. 내가 행하고서 마음에 흡족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호연지기는 위축되고 마네. 그래서 내가 ‘고자는 일찍이 의를 안 적이 없다.’고 말한 것이니, 그는 의를 밖에 있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일세.
   호연지기를 기르는 자는 반드시 의로운 일을 많이 행하기를 일삼되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 잊지도 말며, 조장(助長)하지도 말아서, 송(宋)나라 사람처럼 하지 말아야 하네. 송나라 사람 중에 벼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뽑아놓은[揠苗助長] 자가 있었네. 그가 돌아와서 집안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늘 내가 매우 피곤하다. 내가 벼싹이 자라도록 도와주었다.’고 하자, 그 아들이 달려가서 보았더니 벼싹이 말라 죽어 있었네. 이처럼 천하에는 벼싹이 자라도록 돕지 않는 자가 적네. 호연지기를 무익하다고 해서 버려두는 자는 비유하면 벼싹을 김매지 않는 것과 같고, 호연지기를 억지로 조장하는 자는 비유하면 벼싹을 뽑는 것과 같으니, 조장하면 유익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해치게 되네.”
   “말을 안다[知言]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편벽(偏僻)된 말을 들으면 말하는 사람이 가려진 바를 알고, 방탕(放蕩)한 말을 들으면 말하는 사람이 빠져 있는 바를 알고, 부정(不正)한 말을 들으면 말하는 사람이 도(道)에서 괴리(乖離)된 바를 알며, 회피(回避)하는 말을 들으면 말하는 사람이 논리(論理)가 궁한 것을 알 수 있으니, 이 네 가지 말은 마음에서 나와서 정치(政治)에 해를 끼치며, 정치에 발로되어 일에 해를 끼치네. 성인(聖人)께서 다시 나오시더라도 반드시 내 말을 따르실 것일세.” (...) (공손추 상 2)

... 천하의 넓은 집인 인(仁)에 거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인 예(禮)에 서며, 천하의 큰 도리인 의(義)를 행하여,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도(道)를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하여, 부귀가 마음을 방탕하게 하지 못하며, 빈천이 절개를 바꾸게 하지 못하며, 위무(威武)가 지조(志操)를 굽히게 할 수 없는 것, 이러한 사람을 대장부라 하는 것이오. (등문공 하 2) 

 

  • 반구저기(反求諸⼰): 자신을 돌아보아 원인을 찾음
인자(仁者)의 마음가짐은 활 쏠 때와 같다. 활 쏘는 자는 자세를 바로잡은 뒤에 발사하며, 발사하여 과녁을 적중시키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이긴 자를 원망하지 않고, 적중시키지 못한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을[反求諸己] 이다.” (공손추 상 7)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남을 사랑해도 그가 나와 친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인(仁)을 반성해야 하고, 내가 남을 다스리는데도 그가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신의 지혜를 반성해야 하며, 내가 남에게 예(禮)를 베풀어도 그가 답례하지 않으면 자신의 공경을 반성해야 한다. 어떤 일을 했는데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함이 있으면 모두 돌이켜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하니[反求諸己], 자기 자신이 바르게 되면 천하가 돌아온다. (...) (이루 상 3)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일반인과 다른 것은 그 마음을 보존하기 때문이다. 군자는 인(仁)을 마음에 보존하고, 예(禮)를 마음에 보존한다. 인자(仁者)는 남을 사랑하고, 예가 있는 자는 남을 공경한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남도 항상 그를 사랑해주고, 남을 공경하는 자는 남도 항상 그를 공경해준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가 나를 함부로 대하면, 군자는 반드시 스스로 반성하기를 ‘내가 반드시 불인(不仁)하고, 내가 반드시 예가 없었는가 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일이 어찌 이른단 말인가?’라고 한다. 스스로 돌이켜보아 인하였고, 스스로 돌이켜보아 예가 있었는데도, 그가 여전히 나를 함부로 대한다면 군자는 반드시 스스로 반성하기를 ‘내가 반드시 진실하지 못하였는가 보다.’ 한다. 스스로 반성해보아도 진실하였는데 그가 여전히 나를 함부로 대한다면, 군자는 말하기를 ‘이 사람은 망령된 자이다.’ 할 것이다. 이와 같다면 금수(禽獸)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금수에게 또 무엇을 따지겠는가?
   이 때문에 군자는 종신토록 하는 근심[終身之憂]은 있어도, 하루아침의 일시적인 걱정거리[一朝之患]는 없다. 군자가 종신토록 근심해야 할 것으로는 이러한 것이 있다. 순(舜)임금도 사람이며 나도 사람인데, 순임금께서는 천하에 모범이 되셔서 후세에 전해지시거늘, 나는 아직도 시골 사람에 불과하니, 이러한 것이라면 근심할 만하다. 근심하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순임금처럼 하면 될 뿐이다. 군자는 일시적으로 걱정하는 것이 없으니, 인이 아니면 하지 않으며, 예가 아니면 행하지 않으면 된다. 혹 하루아침의 걱정거리가 있다 해도 군자는 걱정하지 않는다.” (이루 하 28)

 

  • 전심치지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왕이 지혜롭지 못함은 이상할 것이 없구나! 비록 천하에서 가장 쉽게 성장하는 물건이 있더라도, 하루 동안 햇볕을 쪼이고 열흘 동안 춥게 하면 생장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다. 내가 왕을 뵙는 것은 드물고, 내가 물러나오면 왕의 마음을 차갑게 하는 자 즉 선한 마음의 싹이 자라는 것을 막는 자가 이르니, 왕에게 양심의 싹이 있다고 한들 내가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지금 바둑을 두는 것은 하찮은 기술이지만,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다하지[專心致志] 않으면 터득하지 못한다. 혁추(奕秋)는 온 나라에서 바둑을 제일 잘 두는 자이다. 혁추로 하여금 두 사람에게 바둑을 가르치게 할 경우, 그중 한 사람은 마음과 뜻을 다하여 오직 혁추의 말을 듣고, 다른 한 사람은 비록 혁추의 말을 듣기는 하나 마음 한편에 기러기와 새가 날아오면 활과 주살을 당겨서 쏘아 맞힐 것을 생각하고 있다면, 비록 그와 함께 배운다 하더라도 그만 못할 것이다. 이는 그의 지혜가 그만 못하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고자 상 9)

 

  • 선을 좋아하기[好善], 선을 남과 함께 하기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자로는 사람들이 자기의 허물을 말해주면 기뻐하였다. 우임금께서는 좋은 말을 들으시면 절을 하셨다. 순임금께서는 이보다도 더 위대한 점이 있으셨으니, 선을 남들과 함께하여[善與人同] 자신의 불선을 버리고 남의 선을 따르셨으며[舍己從人], 남에게서 선을 취하여 선을 행함을 좋아하셨다. 농사짓고 질그릇 굽고 고기 잡을 때로부터, 황제가 됨에 이르기까지 남에게서 선을 취하지 않음이 없으셨다. 남에게서 선을 취하여 선을 행하는 것은 남이 선을 행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에게는 남이 선을 행하도록 도와주는 것보다 더 훌륭한 일이 없다.” (공손추 상 8)

(집주 中
- 선을 남과 함께 하였다는 것은 천하의 선을 공적으로 하여 사사롭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선하지 못하면 얽매이고 인색해 하는 바가 없이 버리고 남을 따르며, 남에게 선이 있으면 억지로 힘씀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에게 취하였으니, 이것은 선을 남과 함께 하신 조목이다.
- 저 사람의 선을 취하여 내 몸에 행한다면 저 사람이 선을 함에 더욱 권면할 것이니, 이것은 <그가> 선행을 하도록 내가 도와주는 것이다.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선행을 하게 권면하게 한다면 군자의 선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 이 장은 성현이 선을 좋아하는 정성이 애당초 피차의 간격이 없다. 그러므로 남에게 있는 것을 자신에게 넉넉히 할 수 있고,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남에게 미칠 수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4. 양묵 비판

  • 묵자는 유가의 친친에 근거한 차등적 사랑인 인을 별애라고 비판하고, 타인을 평등하게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해주어야 한다는 겸애교리(兼愛交利)를 최상의 도덕원칙으로 제시. 하지만 맹자는 인의 근본은 부모에 대한 사랑, 즉 친친이라고 봄.
  • 양주는 오직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탐하는 극단적 이기주의. 맹자는 인간의 참된 본성은 이익을 욕구하는 동물적 성향이 아닌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사덕을 본질로 하는 선한 도덕성이라고 봄.
성왕이 나오지 아니하여 제후들이 방자하고, 초야에 있는 선비들이 멋대로 의논하여, 양주와 묵적의 학설이 천하에 가득해서, 천하의 학설이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갔네. 양씨는 자신의 지조만을 위하는 위아설(爲我說)을 주장하였으니 이는 임금을 무시하는 것이요, 묵씨는 똑같이 사랑하는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였으니 이는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일세. 아버지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하는[無父無君] 것은 바로 금수이네.
   공명의(公明儀)가 말하기를 ‘임금의 푸줏간에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 살찐 말이 있는데도,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 굶어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는 짐승을 몰고 가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이다.’ 하였네. 양주와 묵적의 도가 종식되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니, 이는 부정한 학설이 백성을 속여 인의(仁義)를 막기 때문일세. 인의가 막히면 짐승을 내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다가, 끝내는 사람들끼리 서로 잡아먹게 될 것이네. (등문공 하 9)

묵적의 제자인 이지夷之가 서벽徐辟을 통하여 맹자께 뵙기를 구하니,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내 본래 만나보기를 원했지만 이제 내가 병중이라. 병이 나으면 내가 가서 만나보리니, 이지는 오지 말라." 며칠 후 또 맹자님을 뵙기를 청하거늘,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은 만나 볼 수 있다. 곧이곧대로 하지 않으면 도가 나타나지 않으니, 내가 곧이곧대로 말하겠다. 내가 들으니 이지는 묵자의 제자이다. 묵가에서는 상을 치르는 데는 박하게 하는 것을 도로 삼는다. 이지가 이 도로서 천하의 풍습을 바꾸려고 생각하나니, 옳지 않다 하여 어찌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러면서 이지는 그 어버이의 상을 두텁게 치루었으니, 이것은 곧 자기가 천하게 여기는 것으로 어버이를 섬긴 것이다." 서자가 이 말을 이자에게 고하니, 이자가 말하였다. "유가의 도에 옛 사람이 '어린 아기를 보호하듯이 한다 (위정자가 어린이를 보호하듯이 백성을 사랑한다) ' 하였으니, 이 말은 어떤 뜻인가? 나는 사랑에는 차등이 없으며, 베풂은 어버이를 말미암아 시작하는 것이라고 하노라." 서자가 이 말을 맹자께 고하니,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이자는 정말로 사람들이 그 형의 아들을 친히 하기를 그 이웃 어린아이를 친히 하는 것과 같이 한다고 여기느냐? 그는 다른 뜻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아기가 기어서 우물에 들어가려 하는 것은 어린 아기의 죄가 아니다. 또 하늘이 물物을 냄은 그로 하여금 한 근본에 따르게 하였는데, 이자는 근본이 둘이기 때문이다. 먼 옛날에 일찍이 그 어버이를 장사지내지 않은 자가 있었는데, 그 어버이가 죽으니 곧 들어다 구렁에 버리고, 며칠 후 여기를 지나니, 여우와 살쾡이가 먹으며, 파리와 모기가 빨아먹고 있는지라, 그 이마에 땀이 흥건하여 흘겨보고 바로 보지 못하니, 땀이 흥건한 것은 사람이 볼까해서 땀에 젖은 것이 아니라, 속마음이 얼굴과 눈에 나타난 것이다. 돌아와서 삼태기와 흙수레로 덮어서 가렸다. 흙으로 덮어 가리는 것이 정말로 옳다면 효자와 어진사람仁人이 그 어버이를 덮어 가림에 또한 반드시 도리가 있을 것이다." 서자가 이 말을 이자에게 고하니, 이자가 망연자실하여 한참을 있다가 말하였다. "잘 알았습니다.“ (등문공 상 5)

 

5. 하늘에 대한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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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다하면[盡其心] 본성을 알게 된다. 자신의 본성을 알게 되면 천(天)을 알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배양하는 것[存心養性]이 곧 을 섬기는 방법이다. 단명과 장수에 상관하지 않고 오직 수신(修身)함으로써 천명(天命)을 기다리는 것이 곧 안심입명(安心立命)[立命]의 방법이다.” (진심 상 1)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는 데 방법이 있으니, 벗에게 믿음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의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다. 벗에게 믿음을 얻는 데 방법이 있으니, 어버이를 섬겨 기쁘게 하지 못하면 벗에게 믿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어버이를 기쁘게 하는 데 방법이 있으니, 자신을 반성해보아 진실하지 못하면 어버이를 기쁘게 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반성하여 진실하게 하는 데 방법이 있으니, 선(善)을 밝게 알지 못하면 자신을 성실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실함[誠] 그 자체는 하늘의 도[天道]이고, 성실함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의 도[人道]이다[誠者 天之道也 思誠者 人之道也]. 지극히 성실하면서 남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경우는 있지 않으니, 성실하지 못하면서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자는 있지 않다.”(이루 상 12)

 

5. 정치사상

  • 왕도 정치: 도덕적 마음 즉 인에 기초한 정치[仁政]. 무력과 강압에 의존하는 패도정치와 대조됨. 왕도정치의 조건으로 왕의 도덕적인 마음, 민생의 보장을 통한 경제적 안정, 현능한 관리의 등용, 적절한 세금의 부가와 도덕적 교화 등을 제시
  • 당시 인하지 못한 정치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을 양식을 먹어도 단속할 줄 모르며,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어도 창고를 열어 구제할 줄 모르고, 사람들이 굶어 죽으면 ‘내 탓이 아니라, 흉년 탓이다.’ 하니, 이는 사람을 찔러 죽이고서 ‘내 탓이 아니라, 병기 탓이다.’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왕께서 흉년을 탓하지 않으시면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위(魏)나라로 몰려올 것입니다.” (양혜왕 상 3) 

양나라 혜왕이 말하였다. “과인(寡人)이 마음을 편안히 하고서 가르침을 받들고자 합니다.”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사람을 죽이되 몽둥이로써 죽이는 것과 칼로써 죽이는 것이 차이가 있습니까?” “차이가 없습니다.” “사람을 죽이되 칼로써 죽이는 것과 정치로써 죽이는 것이 차이가 있습니까?” “차이가 없습니다.”
   “임금의 푸줏간에는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는 살진 말이 있는데, 백성들에게는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는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먹게 한 것과 같습니다. 짐승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도 사람들이 미워하는데, 백성의 부모가 되어 정사를 하되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함을 면하지 못한다면, 백성의 부모 된 도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양혜왕 상 4)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흉년으로 기근이 든 해에 임금의 백성 가운데 노약자들은 전전하다가 죽어서 시신이 골짜기에 뒹굴고, 젊은 자들은 흩어져서 사방으로 간 자가 몇천 명입니까? 그런데도 임금의 창고에는 곡식이 가득 차 있고 재물창고에는 재화가 가득하지만 담당관리 중에 그 사실을 아뢴 자가 없었으니, 이는 윗사람이 태만해서 아랫사람을 해친 것입니다. 증자(曾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경계하고 경계하라. 네게서 나온 것이 네게로 돌아간다[出乎爾者 反乎爾者].’ 하셨으니, 백성들은 지금에서야 되갚은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허물하지 마십시오. 임금께서 인정을 행하시면 곧 백성들은 윗사람을 친애하여 상관을 위해서 죽을 것입니다.” (양혜왕 하 12)

 

  • 인한 정치를 하는 왕이 성공한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이 인(仁)하면 인하지 않은 자가 없고, 임금이 의(義)로우면 의롭지 않은 자가 없다.” (이루 하 5)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힘을 가지고 인(仁)을 가장하는 자는 패자(霸者)이니, 패자는 반드시 큰 나라가 있어야 한다. 덕(德)을 가지고 인을 행하는 자는 왕자(王者)이니, 왕자는 큰 나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탕왕(湯王)께서는 70리의 나라를 가지고 왕업(王業)을 이루셨고, 문왕(文王)께서는 백 리의 나라를 가지고 왕업을 이루셨다. 힘을 가지고 남을 복종시킬 경우에는 상대방이 진심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모자라기 때문에 복종한다. 덕을 가지고 남을 복종시킬 경우에는 상대방이 진심으로 기뻐하여 진실로 복종하니, 70제자가 공자에게 복종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시경》 〈문왕유성(文王有聲)〉에 이르기를 ‘서쪽에서 동쪽에서 남쪽에서 북쪽에서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다.’ 하였으니 이를 말한 것이다.” (공손추 상 3)

(...)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땅이 사방 100리만 되어도 그것을 가지고 천하에 왕 노릇할 수 있습니다. 왕께서 만일 인정(仁政)을 베풀어 형벌을 줄이시고 세금을 적게 거두신다면, 백성들이 여유가 있어서 밭을 깊이 갈고 김을 잘 맬 것이며, 장성한 자들이 여가를 이용하여 효제(孝悌)와 충신(忠信)을 닦아서, 들어가서는 부형(父兄)을 섬기며 나가서는 어른과 상관을 섬길 것이니, 이렇다면 이들로 하여금 몽둥이를 만들어 진(秦)나라와 초(楚)나라의 견고한 갑옷과 예리한 병기를 상대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저 적국의 군주가 자기 백성들의 농사철을 빼앗아 백성들로 하여금 밭 갈고 김을 매어서 그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게 하면, 부모는 추위에 떨고 굶주리며 형제와 처자식은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 저들이 이처럼 그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거든 왕께서 그때 가서 정벌하신다면 누가 왕과 대적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옛말에 ‘인자(仁者)에게는 대적할 사람이 없다[仁者無敵].’고 한 것이니, 왕께서는 제 말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양혜왕 상 5)

맹자께서 양나라 양왕(襄王)을 만나보시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임금 같지 않고, 그 앞에 가까이 나아가도 두려워할 만한 게 보이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천하가 어떻게 안정되겠습니까?’ 하고 묻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한곳으로 통일될 것입니다.’ 하였다. ‘누가 통일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기에,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통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누가 그에게 귀의하겠습니까?’ 하고 묻기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천하에 귀의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벼싹을 아십니까? 7, 8월 사이에 날씨가 가물면 벼싹이 시들다가 하늘이 뭉게뭉게 구름을 일으켜 좍좍 비를 내리면 벼싹이 생기 있게 일어납니다. 그 기세가 이와 같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천하의 임금 가운데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만일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목을 빼고 바라볼 것입니다. 진실로 이와 같다면 백성들이 그에게 귀의하는 것은 물이 낮은 데로 흘러가는 것과 같을 것이니, 그 누가 그 기세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양혜왕 상 6)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하‧은‧주 삼대가 천하를 얻은 것은 인(仁)했기 때문이었고, 천하를 잃은 것은 불인(不仁)했기 때문이었다. 제후의 나라가 폐하거나 흥하고, 보존되거나 망하는 것도 그러하다. 천자가 불인하면 천하를 보전하지 못하고, 제후가 불인하면 나라를 보전하지 못하고, 경(卿)과 대부(大夫)가 불인하면 종묘(宗廟)를 보전하지 못하고, 사(士)와 서인(庶人)이 불인하면 자기 한 몸을 보전하지 못한다. 지금에 사람들이 죽고 망하는 것은 싫어하면서 불인을 즐거워하니, 이는 취하는 것을 싫어하면서 억지로 술을 마시는 것과 같다.” (이루 상 3)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천하에 도(道)가 있을 때에는 덕이 작은 사람이 덕이 큰 사람에게 부림을 당하고, 조금 현명한 사람이 크게 현명한 사람에게 부림을 당한다. 그러나 천하에 도가 없을 때에는 힘이 적은 사람이 힘이 센 사람에게 부림을 당하고, 세력이 약한 사람이 세력이 강한 사람에게 부림을 당한다. 이 두 가지는 자연의 이치와 형세이니,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자는 살고,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
   (...) 만일 강대국에게 명령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문왕(文王)을 본받는 것만 못하니, 문왕을 본받으면 큰 나라는 5년, 작은 나라는 7년이면 반드시 천하에 군림하여 정사하게 될 것이다.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仁者)에게는 아무리 많은 사람으로도 대적할 수 없다. 나라의 임금이 인을 좋아하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天下無敵].’ 하셨다. 이제 천하에 자신을 대적할 자가 없기를 바라면서 인정(仁政)을 행하지는 않으니, 이는 뜨거운 물건을 손에 쥐고서 물로 씻지 않는 것과 같다. 《시경》 〈상유(桑柔)〉에 이르기를 ‘누가 뜨거운 물건을 쥐고서 물로 씻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루 상 3)

 

  • 왕도정치는 가능하다
(...) “과인과 같은 자도 백성을 보호하여 왕도정치를 행할 수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무슨 연유로 내가 가능한 줄을 아십니까?” “제가 제나라 신하 호흘(胡齕)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왕께서 당(堂) 위에 앉아 계시는데, 소를 끌고 당 아래로 지나가는 자가 있었습니다. 왕께서 이를 보시고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가 대답하기를 ‘종(鍾)의 틈을 바르는 데 쓰려고 끌고 갑니다.’ 하였습니다. 이에 왕께서 ‘소를 놓아주어라. 소가 두려워 벌벌 떨면서 죄 없이 사지(死地)로 나아가는 것을 내 차마 볼 수가 없다.’ 하시자,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면 종의 틈을 바르는 것을 그만두오리까?’ 하니, 왕께서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느냐? 소 대신에 양(羊)으로 바꾸어 쓰라.’ 하셨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이면 충분히 왕도정치를 행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왕께서 재물을 아껴서 큰 것을 작은 것과 바꾸게 했다고 말하지만, 저는 진실로 왕께서 소가 죽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는 백성도 있을 것입니다만, 제나라가 아무리 좁고 작으나 내 어찌 소 한 마리를 아까워하겠습니까? 다만 죄 없이 벌벌 떨며 사지로 나아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소 대신 양으로 바꾸게 한 것입니다.” “왕께서는 백성들이 왕께서 재물을 아껴서 그렇게 했다고 말하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지 마소서.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과 바꾸셨으니, 저들이 어찌 왕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왕께서 만일 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것을 측은히 여기셨다면 소와 양을 어찌 구별하셨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하였다. “이것이 참으로 무슨 마음이었던가? 내가 재물을 아껴서 소를 양으로 바꾸게 한 것은 아니었지만, 백성들이 나더러 재물을 아꼈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겠구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괜찮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仁)을 행하는 방법이니, 소는 직접 눈으로 보셨고 양은 아직 보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군자(君子)는 금수(禽獸)를 대할 적에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차마 그 죽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며, 죽으면서 애처롭게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는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군자가 푸줏간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 그런데 이 마음이 왕도정치에 부합되는 까닭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왕께 아뢰는 자가 말하기를 ‘내 힘이 3천 근을 들 수는 있으나 깃털 하나는 들지 못하며, 내 시력이 가는 털끝을 살필 수는 있으나 수레에 실린 나무섶은 보지 못합니다.’라고 한다면 왕께서는 이를 인정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인정 못합니다.” “지금 왕의 은혜가 금수에게까지 미치면서도 그 효과가 백성에게 이르지 않음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그렇다면 깃털 하나를 들지 못하는 것은 힘을 쓰지 않기 때문이며, 수레에 실린 나무섶을 보지 못하는 것은 시력을 쓰지 않기 때문이며, 백성들이 왕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은 왕께서 은혜를 베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왕도정치를 행하지 못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어떻게 다릅니까?” “태산(太山)을 옆에 끼고 북해(北海)를 뛰어넘는[挾太山以超北海]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진실로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른을 위하여 나뭇가지를 꺾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왕도정치를 행하지 않는 것은 태산을 옆에 끼고 북해를 뛰어넘는 것과 같은 종류가 아니라, 바로 나뭇가지를 꺾는 것과 같은 종류입니다.
   우리 집 부형(父兄)을 공경하여 남의 부형에게까지 미치며, 우리 집 자제(子弟)를 사랑해서 남의 자제에게까지 미친다면, 천하를 손바닥에 놓고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시경》 〈사제(思齊)〉에 이르기를 ‘내 아내에게 모범이 되어 형제에게 이르러서 집과 나라를 다스린다.’ 하였으니, 이 마음을 들어서 저기에 베풀 뿐임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미루어가면 천하를 보전할 수 있고, 은혜를 미루어가지 못하면 처자식도 보호할 수 없습니다. 옛사람이 지금 사람들보다 크게 뛰어난 까닭은 딴 것이 없습니다. 해야 할 것을 잘 미루어나갔기 때문일 뿐입니다. 지금 왕의 은혜가 금수에게 미쳤으면서 그 효과가 백성들에게 이르지 않음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저울질한 뒤에야 무게를 알며, 자로 재어본 뒤에야 길이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물이든 다 그렇지만 그중에도 마음이 더욱 심하니 왕께서는 이 점을 헤아리소서. 왕께서는 전쟁을 일으켜 군사와 신하들을 위태롭게 하고, 제후(諸侯)들과 원한을 맺은 뒤에야 마음이 유쾌하시겠습니까?” (양혜왕 상 7)

 

  • 통치자가 즐거움을 백성들과 함께 누리면[與民同樂] 왕도정치를 실현할 수 있음
(...) “왕께서 음악을 아주 좋아하시면 제나라는 아마도 잘 다스려질 것입니다. ... 지금 왕께서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하신다면 왕도정치를 행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양혜왕 하 1)
   (집주 中 범씨왈... 맹자는 백성을 구제함에 간절하였다[孟子切於救民]. )

제나라 선왕이 행궁(行宮)인 설궁(雪宮)에서 맹자를 뵙고서 말하였다. “현자(賢者)도 이러한 즐거움이 있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즐거움을 얻지 못하면 그 윗사람을 비난합니다. 이러한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 하여 그 윗사람을 비난하는 것도 잘못이고, 백성의 윗사람이 되어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하지[與民同樂] 않는 것도 잘못입니다. 임금이 백성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면 백성들도 임금의 즐거움을 즐거워하고, 임금이 백성의 근심을 근심하면 백성들도 임금의 근심을 근심합니다. 온 천하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며 온 천하 백성들과 함께 근심하고도 왕도정치를 하지 못하는 자는 아직 있지 않습니다. (...) (양혜왕 하 4)
 
(...) “과인은 병통이 있으니, 과인은 재물(財物)을 좋아합니다.” “옛적에 후직(后稷)의 증손(曾孫)인 공유(公劉)가 재물을 좋아하였는데, 《시경》 〈공유(公劉)〉에 이르기를 ‘집에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해서는 양식을 노적가리에 쌓고 창고에 쌓으며, 길을 떠나는 자들을 위해서는 마른 양식을 싸되 전대에다 넣고 자루에다 넣고서 백성을 편안히 하여 이로써 나라를 빛낼 것을 생각하여, 활과 화살을 준비하며 창과 방패와 도끼를 갖추고서 이에 새 도읍을 개척하러 비로소 길을 떠났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집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는 노적가리와 창고에 쌓아놓은 양식이 있으며, 길을 떠나는 자들에게는 전대와 자루에 싼 양식이 있은 뒤에야 이에 비로소 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왕께서 만일 재물을 좋아하시면 백성과 함께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왕도정치를 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과인은 병통이 있으니, 여색(女色)을 좋아합니다.” “옛적에 공유의 9세손인 태왕(太王)께서 여색을 좋아하시어 왕비를 사랑하셨습니다. 《시경》 〈면(綿)〉에 이르기를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아침에 말을 달려 서쪽 물가를 따라 기산(岐山) 아래에 이르러서 이에 부인인 강녀(姜女)와 함께 와서 집터를 보았다.’ 하였는데, 이때를 당하여 안으로는 원망하는 여자가 없었으며 밖으로는 홀아비가 없었습니다. 왕께서 만일 여색을 좋아하시면 백성과 함께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왕도정치를 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양혜왕 하 5)

 

  • 민본 사상: 군주보다 백성이 귀하고 국가도 백성을 위해서 존재함. 민의가 곧 천의이며, 백성이 '사직, 임금보다 귀하다'고 할 정도로 모든 정치행위의 근간임. 
하늘이 듣고 보는 것은 백성이 듣고 보는 것이다. 하늘이 밝히고 두렵게 하는 것 또한 백성을 통하여 밝히고 두렵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늘과 백성은 서로 통하는 것이니, 땅을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을 공경해야 한다. (『서경』)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이 가장 귀중하고, 사직(社稷)이 그 다음이고, 임금은 가벼운 존재이다. 그러므로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천자(天子)가 되고, 천자에게 신임을 얻으면 제후(諸侯)가 되고, 제후에게 신임을 얻으면 대부(大夫)가 된다.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제후를 바꾸어버린다. 희생(犧牲)이 이미 준비되고 제사에 바칠 곡식인 자성(粢盛)이 정결하여 제사를 제때에 지냈는데도, 가뭄이 들고 물이 넘치면 사직을 바꾸어 설치한다.” (진심 하 14)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폭군 걸(桀)과 주(紂)가 천하를 잃은 것은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니, 백성을 잃은 것은 그들의 마음을 잃은 것이다. 천하를 얻는 데에 방법이 있으니, 백성을 얻으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 백성을 얻는 데에 방법이 있으니,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백성을 얻을 수 있다.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데에 방법이 있으니,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그들을 위해 모아주고, 그들이 싫어하는 것을 그들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다.
   백성들이 인자(仁者)에게 돌아가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같고, 짐승이 들로 달아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연못을 위하여 고기를 몰아주는 것은 수달이고, 나무숲을 위하여 참새를 몰아주는 것은 매이며,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을 위하여 백성을 몰아준 자는 걸과 주이다.
   이제 천하의 임금 중에 인(仁)을 좋아하는 자가 있다면, 제후들이 모두 그를 위하여 백성들을 몰아줄 것이니, 비록 왕업을 이루지 않으려 해도 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에 왕업을 이루려 하는 것은 마치 7년 된 병을 치료하기 위해 3년 묵은 약쑥을 구하는 것과 같으니, 만일 지금이라도 약쑥을 뜯어 저축해두지 않으면 종신토록 약쑥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일 인정(仁政)에 뜻을 두지 않으면, 종신토록 근심하고 치욕을 당하여 죽거나 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 (이루 상 9)

 

  • 역성혁명(민본주의 혁명) 사상: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면 군주를 교체할 수 있음 (정명론을 임금에게 적용). 탕왕과 무왕은 군주를 살해한 것이 아니라 일개 필부를 죽인 것.
제선왕이 물었다. “탕(湯)이 걸(桀)을 내쫓고 무(武)는 주(紂)를 정벌하였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옛 책에 적혀 있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신하가 그 군주를 죽여도 되는 것입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고 하며 잔적(殘賊)한 자를 일개 사내라 하니, 일개 사내에 불과한 주(紂)를 베었다는 말은 들었어도 신하가 군주를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 민생 안정
(...) 일정한 생업[恒産]이 없어도 일정한 마음[恒心]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의 경우는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그로 인해 일정한 마음도 없어지게 됩니다. 일정한 마음이 없어지게 되면 방탕하고 치우치고 부정하고 사치한 짓을 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죄에 빠지기를 기다린 뒤에 쫓아가서 백성들을 처벌하면 이는 백성들을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들 그물질하는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때문에 밝은 임금은 백성들의 생업을 보살피되 반드시 위로는 부모를 충분히 모실 수 있고 아래로는 처자식을 충분히 돌볼 수 있어서, 풍년이 들어 즐거운 시절에는 종신토록 배부르고 흉년에는 죽음을 면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런 뒤에 백성들을 인도하여 착한 데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 때문에 백성들이 따르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지금에는 백성의 생업을 제정해주되, 위로는 부모를 섬길 수 없고 아래로는 처자식을 기를 수 없어서, 풍년에는 1년 내내 고생하고 흉년에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합니다. 만약 이와 같다면 오직 죽음을 모면하기에도 부족할까 두려운데, 어느 겨를에 예의(禮義)를 차리겠습니까? 왕께서 왕도정치를 행하고자 하신다면 어찌하여 그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5묘(畝)의 집 주변에 뽕나무를 심게 한다면 50세 된 자가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닭과 돼지, 개와 큰 돼지를 기르되 새끼 칠 때를 놓치지 않게 한다면 70세 된 자가 고기를 먹을 수 있으며, 100묘의 토지를 경작함에 농사철을 빼앗지 않는다면 여덟 식구인 집이 굶주리지 않을 수 있으며, 학교의 가르침을 신중히 행하여 효제(孝悌)의 의리(義理)로써 거듭 가르친다면 머리가 희끗희끗한 늙은이가 길에서 짐을 지거나 이지 않을 것입니다. 70세 된 노인이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백성이 굶주리거나 춥지 않게 하고서도 왕도정치를 행하지 못하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양혜왕 상 7)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농토를 잘 가꾸고 세금을 적게 걷으면 백성들을 부유하게 할 수 있다. 제철에 맞게 먹고 예에 맞게 쓰면 재물을 이루 다 쓸 수 없을 것이다. 백성들은 물과 불이 없으면 생활하지 못하지만, 어두운 저녁에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면서 물과 불을 구하면, 주지 않는 자가 없는 것은 지극히 풍족하기 때문이다. 성인(聖人)이 천하를 다스림에 백성들로 하여금 콩과 곡식을 물과 불처럼 풍족하게 소유하게 하니, 콩과 곡식이 물과 불처럼 풍족하다면 백성 중에 어찌 불인(不仁)한 자가 있겠는가?” (진심 상 23)

...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유독 농사지으면서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대인(大人)의 일이 있고, 소인(小人)의 일이 있네. 그리고 한 사람의 몸에 백공이 만든 것들이 모두 필요한데, 만일 반드시 모두 직접 만든 뒤에 쓴다면 이는 천하 사람을 몰아 길에서 분주히 왕래하게 하는 것이네. 그러므로 옛말에 이르기를 ‘어떤 사람은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어떤 사람은 힘을 수고롭게 하니,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의 다스림을 받는다[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 하였네. 남의 다스림을 받는 자는 남을 먹여 살리고, 남을 다스리는 자는 남에게 얻어먹는[治於人者食人 治人者食於人] 것이 천하의 공통된 도리일세.
   요(堯)임금 때를 당하여 천하가 여전히 평정되지 못해서 홍수가 멋대로 흘러 천하에 범람하여 초목이 무성하고 금수가 번식하였네. 그리하여 오곡이 여물지 못하고 금수가 사람을 위협해 짐승의 발자국과 새의 발자국이 나라 안에 어지럽게 나 있었는데, 요임금께서 이를 걱정하시어 순(舜)을 등용하여 다스리게 하셨네. 이에 순이 익(益)으로 하여금 불을 담당하게 하셨는데, 익이 산과 늪에 불을 질러 태우자 금수가 도망하여 숨었네. 그리고 순이 우(禹)로 하여금 홍수를 다스리게 하셨는데, 우가 모든 강(江)을 소통시키고 제수(齊水)와 탑수(漯水)를 소통시켜 바다로 흘러 들어가게 하시며, 여수(汝水)와 한수(漢水)를 트고 회수(淮水)와 사수(泗水)를 터서 양자강(揚子江)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셨으니, 그런 뒤에 중국(中國)이 곡식을 먹을 수가 있었네. 이때를 당하여 우가 8년 동안 밖에 있으면서 세 번이나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못하셨으니, 비록 직접 농사를 지으려 해도 할 수가 있었겠는가? ... (등문공 상 4)

전쟁을 잘하는 자는 가장 최고 형벌을 받아야 한다. 제후를 연합하여 전쟁하게 만드는 자는 그다음 형벌을 받아야 하며 황무지를 개간하고 토지를 마음대로 하여 전쟁을 돕는 자는 그다음 형벌을 받아야 한다.

 

  • 경제적 안정 이후에는 도덕적 교화가 필수적. 사람은 “배불리 먹고 따스하게 입으며 편안하게 지내기만 하고 가르침이 없다면 금수와 가까워지므로”(5-3) 학교를 세워 인륜의 교육을 시행해야 함(5-4).
"고을마다 학교를 세워 효제(孝悌)의 도리를 가르친다면, 머리 희끗한 노인이 짐을 이고서 길거리를 다니는 일이 없게 할 수 있다. 노인이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뭇 백성이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는 사회를 구현하고도 왕이 되지 못한 자는 이제껏 있어 본 적이 없다. (양혜왕 상)

 

기출문제

2024B(빨간 글씨는 박승원 강사의 예시답안)

 

(김병찬 기출집, 도교사 serenity 선생님 타이핑 자료 활용)

[2003?4?] 제자 : 순(舜)이 천자의 자리에 있고, 고요가 법을 집행하는 직책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천자의 아버지인 고수가 살인을 저지른다면, 고요는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

맹자 : (가)법에 따라 집행할 뿐이다.

제자 : 그러면 순은 그 집행을 막지 않겠습니까?

맹자 : 순이 어찌 막겠는가?

제자 : 그러면 순은 어떻게 할까요?

맹자 : (나)순은 천자의 자리를 포기하고 몰래 아버지를 업고 도망가서 바닷가에 숨어 지내며 평생 즐거운 마음으로 천하를 잊어버릴 것이다. 

((가)에서 맹자가 고요의 태도를 통해 강조하는 중심 덕목과 그 특징 예시답안: 의. 의란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을 근본으로 하는 것으로서, 올바른 행위의 표준, 즉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사회적 정의이다.)

((나)에서 순이 우선성을 부여한 덕목: 인)

 

[2007] 양씨는 위아(爲我)를 취하여 털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한다고 할지라도 하지 않는다. 묵씨는 겸애(兼愛)를 취하여 머리끝 에서 발꿈치까지 다 닳아 없어질지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감행한다. 양씨의 위아는 임금이 없는 것과 같고, 묵씨의 겸애는 부모가 없는 것과 같다. 임금이 없고 부모가 없으니 금수(禽獸)와 같다. 

(양묵의 윤리 사상에 대항하기 위해 확립한 도덕 규범 예시답안: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의 오륜. 오륜은 사람에 대한 따뜻하고 포용적인 사랑인 인을 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라는 사회의 여러 관계 속에서 실천할 때 요구되는 구체적인 인륜의 실천 덕목이다.)

 

[2009] (다음 진술의 타당성을 뒷받침해 주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 나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예를 회복하라!(克己復禮) 

● 먼저 사람이 된 뒤 사회적 활동을 하라!(修己以安人)

● 내가 서고자 하는 곳에 남을 세워 주어라!(己欲立而立人)

① 놓아 버린 마음을 찾는다.(求放心)

②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善養浩然之氣)

③ 생명을 온전히 하고 그 참다움을 보존한다.(全生保眞) (x)

④ 사람에게는 모두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 있다.

⑤ 성인(聖人)은 사람 마음의 똑같음(心之所同然)을 먼저 이룬 사람일 뿐이다.

 

[2010] (다음 설명에 가장 적절하게 부합하는 유가사상의 개념어는?) 진화는 유전자들의 생존 경쟁으로 파악될 수 있다. 유전적으로 가까운 혈연을 돕고자 하는 성향, 이것이 바로 맹목성 이타주의(hard-core altruism)의 기초를 이룬다. 만약 2명의 자식, 4명의 조카, 또는 8명의 사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목숨을 내걸어도 유전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다. (답: ② 친친(親親))

 

[2007] ((가), (나)에는 도덕적인 덕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나타나 있다. 그 차이점을 서술하고, (가)와 (나)를 주장한 사상가가 강조한 도덕적인 덕의 함양 방법을 각각 제시하시오.)

(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측은히 여기는 마음과 수치스러워하는 마음, 공경하는 마음, 시비를 가리는 마음을 다 가지고 있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인(仁)이고 수치스러워하는 마음이 의(義)며, 공경하는 마음이 예(禮)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이 지(智)이다. 이와 같은 인의예지는 밖으로부터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인데, 다만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구하면 얻을 수 있지만 버리면 잃는다.

(나) 덕에는 지적인 덕과 도덕적인 덕이 있다. 지적인 덕은 대체로 교육에 의해 생기기도 하고 성숙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경험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한편 도덕적인 덕은 습관의 결과로 생긴다. 그런 까닭에 ‘에티케’(ethike)란 말은 ‘에토스’ (ethos, 습관)란 말을 조금 고쳐서 만든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도덕적인 덕은 그 어느 것이나 본성적으로 우리에게 부여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예시답안: 맹자는 도덕적 덕을 모든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는 선천적인 것으로 보는 반면, 아리스토테렐스는 도덕적 덕을 덕 있는 행위의 반복적 활동을 통해 획득되는 후천적인 것으로 본다. 맹자는 선천적이고 보편적인 본심의 덕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여 본래의 마음을 지키고 본성의 선함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구방심, 양호연지기 등의 방법을 강조한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덕 있는 행위의 반복적 실천을 도덕적 덕의 함양 방법으로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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