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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 교생실습] 토론 수업

neon_eidos 2023. 6. 20. 19:21

남자중학교로 교생실습을 갔고, 1학년 도덕 수업을 했다.

아래는 교생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도덕 수업의 의미 및 조건'에 관해 쓴 도덕윤리교재연구및지도법 최종 보고서를 편집한 것이다. 주로 내가 시도했던 토론 수업에 대한 반성을 썼다.

 

1. 좋은 도덕 수업의 의미

도덕 수업의 목적은 학생들의 도덕적 성장이나 발달이고, 이 목적을 달성하는 수업이 좋은 도덕 수업일 것이다. 도덕적 성장은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어떤 지식이나 기능이나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학교 도덕 1 ‘문화 다양성단원 수업이라면, 학생들이 샐러드볼 이론 또는 문화상대주의와 같은 여러 개념들을 이해해서 다문화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더 정교하게 수립하거나, 문화 간 갈등 상황에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건설적으로 대화하는 연습을 하거나,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편견을 내려놓고 존중하려는 태도를 가지게 되는 등의 변화를 경험하는 수업이 좋은 수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학생들이 샐러드볼 이론 같은 개념들을 자신과는 무관한, 시험 문제를 푸는 데만 필요한 말들로 받아들이거나, 수업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존중해야 합니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했지만 실제 다문화 상황 속에서 더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지는 않았다면 좋은 수업을 경험했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즐겁고 참여가 활발한 수업이었더라도, 도덕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좋은 오락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언정 좋은 도덕 수업이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래에서는 이번 교육실습에서 가장 아쉬웠던 수업과 더 나았던 수업을 돌아보고, 좋은 도덕 수업, 즉 도덕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수업이 어떤 조건에서 달성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한 바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2. 가장 아쉬웠던 수업

교육실습 경험 중 가장 당혹스럽고 아쉬웠던 수업은 내가 처음으로 토론 활동을 진행했던 수업이다. 토론 주제는 부르카 금지법이었다. 조별로 2명은 찬성, 2명은 반대를 맡아 논거를 정리한 다음, 조별 토론을 통해 조별로 최선의 입장에 도달하고, 이를 발표한 후 전체 토론으로 이어갈 계획이었다. 이 수업에서 나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문화 다양성을 바라보는 관점들에 대한 개념 이해, 문화 상대주의적 태도, 그리고 보편 규범에 근거해 비판하는 기능 등 그동안 배운 역량들을 실제 문제에 적용하며 훈련하는 것이었고, 하나는 건설적 논쟁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전 수업에서 문화 상대주의와 보편 규범을 학습하면서는 19세기 제국주의자들이나 명예 살인처럼 누가 봐도 문제임이 명백한 사례들을 다루었는데, 현실에서는 이와 달리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명백하지 않아 논쟁이 되는 복잡한 일들이 발생한다는 것을 놓치지 않고 싶었다. 그리고 그동안 습득한 지식, 기능, 태도를 이러한 복잡한 논쟁 문제에 적용함으로써 더 정교화하고 깊이 내면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도덕 수업에서는 적절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논쟁 문제를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태도로 토론하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승리를 위한 경쟁적인 토론이 아니라, 모든 입장의 논거를 검토하고 함께 최선의 입장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사고의 내적 충돌과 확장을 경험하는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러한 목표들은 대체로 실현되지 않았다.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혼란의 연속이었다. 우선 조를 자율적으로 구성하도록 하니 학생들이 우왕좌왕하며 불필요하게 시간을 낭비했을 뿐만 아니라, 한 학생이 조에 들어오는 것을 다른 학생이 거부하면서 상처를 주는 경우가 발생했다. 조를 편성하고 토론 활동을 시작하자, 학생들은 자료를 읽고 논거를 정리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은 채 금세 떠들썩하게 토론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양한 찬반 논거가 담긴 A4 한 쪽 분량의 읽기자료를 제공했지만, 들어 보니 학생들은 자료를 전혀 참고하지 않거나 기껏해야 자기 입장에 부합하는 한두 마디의 말을 취할 뿐이었다. 또 학습지에 주장, 근거, 예상 반론, 재반론을 작성할 수 있도록 양식을 만들어 놓았지만, 학생들은 각 항목에 무엇을 작성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으로 보였다. 학생들의 토론은 계속해서 더욱더 열띠게 진행되었는데, 대체로 학생들은 부르카를 쓰는 것은 본인의 자유다. 쓰고 싶다는데 왜 못 쓰게 하느냐.” 또는 너무 답답해 보인다. 인권 침해다.” 같은 단편적이고 숙고되지 않은 발언을 반복하는 것으로 보였고, 상대의 논거를 충실하게 검토하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였으며, 승패에 몰두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예정된 조별 토론 시간이 거의 다 지나갔고, 조별로 합의된 입장을 도출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나는 그 순간 계획을 바꾸어 조별로 합의된 입장 대신 가장 좋았던 찬성 근거와 반대 근거 하나씩을 정하여 발표할 준비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조별 발표를 들었다. 한 명의 발표자가 그 조에서 나온 찬성 근거와 반대 근거를 모두 말하지 못해서 한 명이 찬성 근거를 발표한 다음 다른 한 명이 반대 근거를 말해야 하는 경우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학생들이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많은 학생들이 찬성 근거를 발표하는 차례에 반대 근거를 발표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계속 발생해서,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는 것을 찬성/반대한다는 말이 학생들에게 많이 헷갈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촉박하여 각 조가 돌아가며 발표하는 것으로 수업을 마쳐야 했던 점도 아쉽다. 학생들의 발표를 바탕으로 사고를 심화시키는 발문을 제시하거나, 서로 의견을 주고받도록 하거나, 학생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학생들이 놓친 중요한 내용을 보완하여 논의를 정리하는 과정을 진행하지 못했다.

 

많은 학생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수업이기는 했지만, 학생들이 교육자가 의도한 지식, 기능, 태도를 배우고 적용하는 수업은 아니었다. 대체로 학생들이 경험한 것은 부르카 금지법에 대해 자신에게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입장을 바탕으로 논쟁에서 승리하려 노력하는 경험이었다. 각자 처음의 견해를 고수하고, 생각을 확장시키지 못하는 모습은 내가 윤리적 시민 양성에 있어 정말 유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토론의 모습이었다.

 

3. 수업의 개선

동일한 수업을 다음 반에서 한 번 더 진행했다. 많은 수정을 가했다. 우선 학생들이 토론에 앞서 찬반 논거 자료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생각하여, 정해진 시간 동안 조용히 자료를 검토하고 개별적으로 논거를 정리하는 단계를 마련했고, 중요한 내용은 내가 PPT 슬라이드에 요약하여 강조하고 해설하였다. 토론을 준비할 때 학습지 양식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특히 예상 반론과 재반론을 작성하는 칸에 어떤 내용을 작성해야 하는지 예시를 들며 설명하고 이것을 왜 작성해야 하는지도 설명하였다. 또 토론에 앞서 토론의 규칙을 분명하게 제시하고자 했다. 이 토론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최선의 입장에 도달하기 위한 공동 탐구라는 것, 주장하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주장된 내용에 대해 응답할 것, 상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할 것 등을 강조했다. 그리고 조별 토론 대신 바로 전체 토론을 진행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학생들의 모든 발언을 내가 듣고 필요할 때마다 개입할 수 있었다. 한 학생이 비난과 야유의 대상이 될 때 바로 개입하여 토론의 목적을 상기하고 그 학생이 토론에 기여하고 있음을 주지시켰고, 학생들이 개념적 혼란을 겪거나 자신의 의견을 잘 전달하지 못해 오해가 발생할 때 나 또는 다른 학생들이 보충 및 명료화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편 적극적인 학생들만 발언하지 않도록, 우선 평소 소극적인 학생을 위주로 무작위 지명하여 발언을 들은 다음 자유롭게 손을 들고 발언하도록 했다. 부르카 금지법에 대한 찬성/반대라는 표현은 부르카 허용/금지로 수정하여 혼란을 줄였다. 이렇게 수정한 수업에서 학생들은 조금 더 내 의도에 가까운 학습을 경험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울러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다룬 개념들을 생각보다 잘 기억하여 적용하지 못하는 것을 봐 왔던 만큼, 수업에서 강의식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부분에서도 여러모로 개선을 시도했다. 동료 교생들의 수업을 참관하면서 어려운 개념을 차근차근 풀어서 설명하고 학생들의 이해를 확인하는 것을 보고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친숙한 사례 사용하기, 반대 개념과 비교하여 설명하기, 사진 및 영상 자료 풍부하게 사용하기 등의 측면에서 노력하였다.

 

4. 좋은 도덕 수업을 위한 조건

이런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좋은 도덕 수업의 조건 몇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것을 명료하게 만들어야 한다. 내용 지식을 강의할 때도 학생들 입장에서 어렵거나 헷갈릴 만한 내용은 충분히 풀어 설명해야 하고, 활동을 지시할 때도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단계별로 구체적으로 안내해야 한다. 학생들이 척척 알아듣고 의도된 활동을 알아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나도 모르게 하기 쉽기에, 주의해야 한다. 이는 조례를 진행하면서도 깨달을 수 있었다. 첫 조례 시간에 A4 용지를 접어 책상에 세울 삼각 이름표를 만드는 활동을 했는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지극히 간단한 종이접기라서 화면에 안내도를 띄워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학생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아서 오랜 시간 끝에 여러 번 잘못 접어 너덜너덜 구겨진 이름표를 완성한 학생들이 여럿이었다. 나에게는 익숙한 것들이 학생 입장에서는 생소하다는 것을 잊지 말고, 어디서든 혼란과 오해가 발생할 수 있으리라 예상해야 한다. 명료화를 위한 노력은 나의 아쉬웠던 첫 토론 수업 이후로 내가 가장 신경 썼던 점이다.

 

둘째, 학생과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첫 수업부터 마지막 수업까지 가장 아쉬웠던 것은 학생이 어떤 발언을 했을 때 적절히 반응해주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토론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발언을 요약하고, 부족한 점을 보충하도록 돕고, 더 심층적인 쟁점으로 연결시키는 등 즉각적인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도덕적 성장을 촉진하고 교사가 자신의 발언을 경청한다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아직 학생들 앞에 서 있으면 긴장되기도 하고, 학생들의 의견들을 경청해서 그 함의를 빠르게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향후 많은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사실 긴장한 탓에 강의 중 발문에 여러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대답해주어도 누가 대답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다. 수업 중 학생들의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을 면밀히 파악하는 것은 학생들과 소통하는 데 기본이 될 것이다. 또 학생과 소통한다는 것은 각 학생의 특성을 파악하여 개인의 수준과 필요에 맞추어 소통하는 것을 포함할 것이다. 손 드는 학생을 발언시키기보다는 지명을 하여 평소 소극적인 학생들도 참여하도록 하는 것, 조리 있게 주장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학생의 경우 충분히 기다려주거나 하고자 하는 말을 표현하도록 보조해주는 것, 사고의 수준이 높은 학생에게는 심화된 질문을 제시하는 것 등이 내가 시도하고자 했지만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소통의 요소들이다.

 

셋째, 교사가 내용 지식을 깊이 있게 공부해 두어야 한다. 문화 다양성에 대해 수업하는 내내 이 주제에 대한 나의 지식의 부족을 반성하게 되었다. 내가 문화 다양성에 대해 진정으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어떤 입장에 도달한 한에서, 그만큼만 열의 있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였다. 토론을 진행할 때에도 학생들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정리하고 심화시키며 논의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그 주제에 대해 학생들이 제기할 법한 찬반 근거를 내가 먼저 모두 숙지하고, 각각의 근거에 대한 나름의 평가와 분석을 해 놓았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5. 나가며

좋은 도덕 수업의 의미와 조건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서 부딪혔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는 언제 도덕적으로 성장하는가?’였다. 사실, 답하기 쉽지 않다. 나 자신이나 학생들이 도덕적으로 성장하는 순간을 더 많이 경험해나가면서 그 답을 발전시키고, 더욱 도덕적 성장을 일으킬 수 있는 수업을 만들어나가야 하겠다.

 

대구 이슬람 사원 건설 갈등에 대한 토의 수업을 준비했다가, 절반밖에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