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상념

2025년 5월

neon_eidos 2025. 5. 8. 06:09

1.
여전히 귀여워 죽겠다.
어제 동아리 시간에는 그냥 내내 넋 놓고 구경하면서 귀여워했다. 우리 반이 절반 이상인 농구부. 교실에서 축 처져 있었던 이들이 파닥파닥 살아나는 광경. 경이롭다.
너무 귀여워서 가끔 슬퍼진다. 매일 이들을 보는 것만으로 숙연해진다. 감히 여유롭고 달콤한 일상을 보내서는 안 될 것만 같다.

2.
처음으로 한번 분위기 깔고 훈계도 해 보았다. 주말 내내 연습했다. 초조하고 걱정됐는데, 다행히 조용히 들어 주었다.

3.
내가 너무 교사 같지가 않다.
말도 너무 못하고, 가르치는 게 힘겹다.
혼낼 줄 모른다. 애들이 말 안 듣는 것도, 떠드는 것도, 위험하게 노는 것도, 공부 안 하는 것도 잘못 같지가 않다.
그러나 조용하고 분위기 잡힌 교실을 원하는 이들도 있다.
좋은 멘토들이신 부서 부장님, 과목 대표선생님이 계속 에둘러 말씀해주신다.
단호할 땐 단호해야 하는데, 어떤 때가 단호해야 할 때인지 내가 아직 시야가 좁아 잘 모르는 듯.

4.
잘 모르는 얘기를 아는 것처럼 설명해야 하고, 인생이 힘들다는 애들한테 아무 말도 해주지 못한다.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나도 궁금하다.

5.
교과서 내용이 짜증난다. 재밌는 거 읽히고 싶은데.

6.
집중을 못 한다. 너무 할 일이 많고 잠잘 시간이 늘 부족하면서도. 잡념이 많다. 사람들한테 한 말과 들은 말과 했어야 하는 말에 대한 생각이 자꾸 튀어나온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많은 수의 사람을 보는 게 익숙지 않다. 작년에는 엄마, 애인, 그리고 가끔 교수님이나 대학원 동료들이랑밖에 말할 일이 없었다. 사람을 만날 때 온 정신이 약간 들뜨고 피로한데, 그게 쉼없이 지속되는 생활. 내 수업을 듣는 도합 200명 넘는 학생들, 동료 교사들, 학부모들. 어떡해야 덜 들뜨고 더 집중하지.

7.
교사가 되고 싶다는 SH가 교무실 놀러 왔을 때 나한테 교사 되니 좋냐고 했다. 좋다고 했다. 뭐가 좋냐고 했다. 많은 말들이 목에 차오르는데 안 나오고, "여러모로 좋다"는 말만 나왔다.
전에 JG과 JW도 왜 더 좋은 데 안 가고 여기로 왔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귀여운 여러분도 보고" 좋다고 했다.
뭐가 좋은가. 대학원보다 나은 거 같긴 한데.
수업을 하고 애들을 만나고, 늘 생생하고 절절한 생각과 느낌의 계기가 있고, 일이 과중하고 힘들지만 일을 잘 못해도 살려놔 준다.

하지만 너무 사람을 정신없게 만든다. 하루하루 일들을 쳐내느라 지치고, 무뎌지고, 내게 있었던 것 같은 생각들을 잊어버리는 거 같다.
썩어가는 느낌은 안 들어 좋은데, 얕아지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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