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에서 만물이 하나임 및 명에 순응하기에 관련하여 묵상할 대목 세 곳을 골라봄.
物視其所一 (5-1 중에서)
自其異者視之, 肝膽楚越也., 自其同者視之, 萬物皆一也.
(자기이자시지, 간담초월야.자기동자시지, 만물개일야.)
다르다는 점에서 본다면 간과 쓸개도 초나라와 월나라의 거리이지만, 같다는 점에서 본다면 만물은 모두 하나이다.
夫若然者, 且不知耳目之所宜而遊心乎德之和.,
(부약연자, 차부지이목지소의, 이유심호덕지화,)
그와 같은 자는 또한 귀와 눈에 맞는 바를 알지 못하고, 덕의 조화에 마음을 노닐며,
物視其所一而不見其所喪, 視喪其足猶遺土也.
(물시기소일, 이불견기소상, 시상기족, 유유토야.)
만물에 대해 그것이 하나인 바를 보고, 자신의 잃은 바를 알지 못하니, 자기 발을 잃은 것 보기를 마치 흙덩어리를 버린 듯이 하였다.
cf. 朝三 (2-4 중에서)
勞神明爲一, 而不知其同也, 謂之朝三. 何謂朝三? 狙公賦芧曰..「朝三而暮四.」衆狙皆怒. 曰..「然則朝四而暮三.」 衆狙皆悅. 名實未虧而喜怒爲用, 亦因是也. 是以聖人和之以是非而休乎天鈞, 是之謂兩行.
(노신명위일, 이부지기동야, 위지조삼. 하위조삼. 저공부서왈. 조삼이모사, 중저개노. 왈, 연즉조사이모삼, 중저개열. 명실미휴, 이희노위용, 역인시야. 시이성인화지이시비, 이휴호천균, 시지위양행.)
정신을 수고롭게 하면서 한가지인 것을 추구하지만, 그것이 같음을 알지 못하니, 이것을 일러 ‘조삼’이라고 한다. 무엇을 ‘조삼’이라고 하는가.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이 상수리를 주면서 말하였다. “아침에 세 개씩 주고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라고 하니 많은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냈다. 말하기를,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씩 주고 저녁에 세 개씩 주겠다”라고 하니, 많은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명칭과 실상이 손상되지 않았는데도 기뻐하고 성내는 것이 작용하니 역시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시비를 조화시켜 천균에서 쉬니, 이것을 ‘양행’이라고 한다.
命之行也 (5-4 중에서)
死生存亡, 窮達貧富, 賢與不肖毁譽, 飢渴寒暑,
(사생존망, 궁달빈부, 현여불초훼예, 기갈한서)
사생과 존망, 궁달과 빈부, 현명함과 어리석음, 헐뜯음과 칭찬, 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는
是事之變, 命之行也.,
(시사지변, 명지행야.)
현상이 변하는 것이며 천명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日夜相代乎前, 而知不能規乎其始者也.
(일야상대호전, 이지불능규호기시자야)
(이런 변화가) 밤낮으로 앞에서 바뀌어도 지각은 그것이 시작되는 것을 헤아릴 줄 모릅니다.
故不足以滑和, 不可入於靈府.
(고부족이골화, 불가입어영부.)
그러므로 (이것들이) 조화를 어지럽히지 못하고 마음에 개입될 수가 없습니다.
cf. 死生命也 (6-1 중에서)
古之眞人 不知說生 不知惡死 其出不訢 其入不距 翛然而往 翛然而來而已矣 ... 死生 命也 其有夜旦之常 天也 人之有所不得與 皆物之情也
(고지진인, 부지열생, 부지오사, 기출불흔, 기입불거, 유연이왕, 유연이래이이의. ... 사생, 명야. 기유야단지상, 천야, 인지소부득여, 개물지정야.)
옛날의 진인은 삶을 좋아할 줄 모르고 죽음을 싫어할 줄 몰라, 태어나는 것을 기뻐하지도 않고 죽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으니, 매이는 것 없이 가고 매이는 것 없이 올 뿐이었다. ... 죽음과 삶은 운명이니, 거기에는 밤과 낮 같은 일정함이 있어 자연스러운 것으로, 사람이 간여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모두가 만물의 실상이다.
安時而處順 (6-3 중에서)
嗟乎 夫造物者 又將以予 爲此拘拘也 子祀曰 汝 惡之乎 曰 亡 予何惡
(차호. 부조물자, 우장이여위차구구야. 자사왈. 여오지호? 왈. 무. 여하오.)
“아아, 저 조물주가 역시 아마 나를 이렇게 굽은 모습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자사가 말하였다. “그대는 그것을 싫어하는가?” 자여가 말하였다. “아니다. 내 어찌 싫어하겠는가.
浸假而化予之左臂 以爲雞 予因以求時夜
(침가이화여지좌비이위계, 여인이구시야)
가정하여 나의 왼팔을 변화시켜 닭으로 만든다면, 나는 따라서 밤을 알리기를 바랄 것이고,
浸假而化予之右臂 以爲彈 予因以求鴞炙
(침가이화여지우비이위탄, 여인이구효자)
가정하여 내 오른팔을 변화시켜 탄환으로 만든다면, 나는 따라서 올빼미 구이를 얻으려고 할 것이며,
浸假而化予之尻 以爲輪 以神 爲馬 予因而乘之 豈更駕哉
(침가이화여지고이위륜, 이신위마, 여인이승지, 기경가재.)
가정하여 나의 엉덩이를 변화시켜 수레바퀴로 만든다면 정신을 말로 삼아 나는 따라서 그것을 탈 것이니 어찌 다른 수레를 바꿔 타겠는가.
且夫得者 時也 失者 順也
(차부득자, 시야, 실자, 순야.)
무릇 (삶을) 얻는 것은 (올) 때가 된 것이고, 잃는 것은 (천명을) 따르는 것이다.
安時而處順 哀樂 不能入也
(안시이처순, 애락불능입야)
올 때를 편안히 여기고 천명을 따름에 맡기면, 슬픔과 즐거움이 끼어들 수 없으니,
此古之所謂縣解也 而不能自解者 物有結之
(차고지소위현해야. 이불능자해자, 물유결지.)
이것이 옛날에 일컬었던, ‘매달린 데에서 풀어 주는 것[현해]인데, 스스로 풀지 못하는 것은 외물이 그를 묶고 있기 때문이다.
且夫物 不勝天 久矣 吾又何惡焉
(차부물불승천구의, 오우하오언.)
또한 외물이 하늘을 이기지 못함이 오래되었는데 내 어찌 이것을 싫어하겠는가.”
cf. 不將不迎 (7-6 중에서)
至人之用心 若鏡 不將不迎 應而不藏 故 能勝物而不傷
(지인지용심약경, 부장불영, 응이부장, 고능승물이불상.)
지인의 마음씀씀이는 거울과 같아, 보내지도 않고 맞이하지도 않으며, 호응하면서도 간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만물을 감당해 내면서 상하지 않을 수 있다.
[주저리]
- 인간적인 일들에서 발생한 강한 감정을 경험하는 중, 인간적인 탁월성을 계발하고 또 인간적인 감정 대처 수단을 가능한 대로 이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너머의 어떤 이해를 갖기 위한 읽기와 묵상이 필요하겠다고 생각. 이에 장자 내편을 다시 쭉 읽고 지금 와닿는 부분을 골라 몇 개의 묵상거리를 만듬. 이번에 주목한 부분들은 숙명론적인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숙명론에 대한 시비 논변이나 어떤 주장을 도출하는 일보다는 머물러 묵상을 해보려 함.
-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어떤 기쁘거나 슬퍼할 일도 있지 않았다. 누가 곁에 있거나 없음, 일이 잘됐거나 안됨, 내가 잘하거나 못함 모두 조삼모사와 조사모삼의 차이. 나의 애락과 호오, 시비 들은 애초에 서 있을 땅이 없다. 불구나 생사가 문제적으로 보이는 관점에서, 다면적이고 변화하는 총체의 관점으로 아득히 물러나기.
참고문헌
동양고전종합DB
김창환 역. (2012). 장자 내편. 을유문화사.
유호진 선생님 강의자료(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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