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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은 집단의 기존 입장을 강화할 뿐인가? Sunstein (2002), The Law of Group Polarization

neon_eidos 2023. 3. 16. 13:57

Sunstein, C. R. (2002). The Law of Group Polarization. The Journal of Political Philosophy, 10(2), 175-195.
 
[세 줄 요약]
집단 숙의는 참가자들의 기존 입장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집단적 극단화' 현상은 사회적 이미지 유지 추구와 편향된 논변 풀이라는 두 가지 집단 역동에 기인한다. 숙의가 이러한 기제 때문이 아니라 논변의 타당성에 따라 전개되게끔 집단을 구성하는 방향의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한편 고립된 동질적 집단 내 토론은 집단적 극단화를 통해 사회 파편화와 극단주의를 발생시킬 위험도 있지만, 억압되었던 소수의 목소리를 키워줌으로써 사회 전체의 논변 풀을 다양화해주는 이점도 있다. 이러한 동질 집단 숙의를 보장하면서도 그들이 외부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1. 집단적 극단화(group polarization)
- 집단적 극단화: 집단 숙의의 결과 집단 구성원들의 견해가 그들의 기존 견해가 가리키는 방향의 더 극단적인 지점으로 이동하는 현상(members of a deliberating group predictably move toward a more extreme point in the direction indicated by the members' predeliberation tendencies. - p.176). 결과적으로 집단은 집단 내 전형적인 또는 평균적인 개인이 내렸을 의사결정보다 더 극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게 됨. 
- 예: 반페미니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모여 토론한다면, 일 년 후 그들은 매우 보수적인 반페미니스트가 될 것.
- 다양한 맥락에서 통계적으로 매우 일정하게 발견되는 예측가능한 현상.
 
2. 집단적 극단화를 설명하는 두 가지 주요 메커니즘
- (1) 사회적 영향(social influence), 특히 평판과 자아개념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 사람들은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긍정적으로 지각되고 또 자신을 긍정적으로 지각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집단에서 제기되는 주요 입장에 맞추어 자신의 견해를 조정함
- (2) 한정된 논변 풀(limited argument pool): 사람들의 견해는 설득력 있는 논변의 영향을 받는데, 집단의 견해가 특정한 방향으로 기울어진 경우 그 방향을 지지하는 논변이 불균형적으로 많이 제시되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견해는 그 방향으로 더욱 나아가게 됨
- 추가적인 가설: 사람들은 극단적 견해를 표현하기를 조심스러워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지지적인 입장을 보여주면 그러한 자기규제가 풀리고 더 자유롭게 자기 견해를 표현하게 됨
 
3. 집단적 극단화(또는 탈극단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
- 집단 구성원들이 같은 정체성을 공유한다고 여기는 경우 극단화 현상은 강화되며,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여길 경우 극단화 현상이 감소
- 집단이 대등하게 대립하는 하위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을 때, 그리고 구성원들이 유연한 태도를 가질 때 탈극단화가 발생
- 집단의 기존 성향을 옹호하는 논변이 너무 설득력이 없거나, 소수 의견이 매우 설득력이 있다면 소수 의견의 방향으로 집단 구성원들의 견해가 이동할 수도 있음
- 집단 구성원 간 정서적 유대, 공통 정체성, 소속감, 연대 의식, 경쟁하는 외집단의 존재 등은 의견 대립을 억제하고 집단적 극단화를 강화
- 잘 알려진 오래된 이슈들은 탈극단화가 일어나기 어려움 familiar and long-debated issues do not depolarize easily.
- 주기적으로 만나 토론하는 집단에서는 극단화 현상이 반복적으로 강화될 것
- 수사적 비대칭성rhetorical asymmetry과 엄격화the "severity shift": 징벌적 손해배상금 액수를 더 높게 주장하는 사람이 수사적으로 유리함 -- 이처럼 구체적인 사실들과 무관하게 단지 더 강도 높은 주장이 더 설득력 있을 가능성이 높을 때가 많음
 
[집단 내 정서적 유대가 극단화를 부추긴다는 설명은 시민적 우정이 건설적 토론에 기여한다는 주장(정창우, 2022: 185-220; Haidt, 2012)과 배치됨 -- 물론 후자는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보다는 상반된 견해를 가진 사람들 간의 정서적 유대를 강조.]
 
4. 집단적 극단화의 현실적 함의
- 종교집단이 구성원들의 신념을 강화함, 극적인 사회적 사건이 사람들의 태도를 극단화함[?], 사회개혁을 도모하기 위해 개혁 지지자들 간 토의를 도모하는 "전문적 극화 유도자professional polarizers" 내지 "극화 사업가polarization entrepreneurs"도 상상 가능
- 소외집단("outgroup")과 음모론: 정체성을 공유하고, 다른 집단과의 토의로부터 자발적으로 또는 강제적으로 배제된 집단의 극단화 위험
- 갈등, 민족이나 국가 간 증오, 전쟁 등에서 집단 극단화가 작동
- 인터넷: 자기 견해에 부합하는 견해에만 주로 노출되는 파편화의 문제가 극단화 우려 발생시킴 [필터버블, 에코체임버]
 
5. 고립된 동질 집단 숙의(enclave deliberation): 위험성과 필요성
- 동질 집단 숙의: 비슷한 생각을 가졌으며, 많은 시간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대화하거나 생활하는 집단 내의 숙의(deliberation among like-minded people who talk or even live, much of the time, in isolated enclaves - p.177)
- 위험성: 제한된 논변 풀과 편협한 사회적 영향으로 인한 광범위한 오류와 사회적 파편화, 극단주의와 불안정성의 위험을 증가시킴 --> 그러므로 크고 이질적인 공적 영역에서의 숙의를 보장하고,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다른 관점들로부터 차단되는 상황을 방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음
- 하지만 어느정도의 고립은 필요: 동질 집단 숙의는 부당하게 억압되었던 견해들이 발달되고 결국 경청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논변 풀을 다양화할 수 있음 -- 이질 집단 숙의에서는 지위 높은 구성원들이 논의를 주도되는 경향이 있으며, 여성, 흑인, 저학력자 등 낮은 지위의 구성원들은 침묵하는 경향이 있음. 고립된 동질 집단 토의를 통해 많은 바람직한 사회 운동이 생겨남.
- 따라서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토론을 보장하는 동시에, 이들이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로부터 차단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함(It is desirable to create spaces for enclave deliberation without insulating enclave members from those wiht opposing views, and without insulating those outside of the enclave from the views of those within it. - p.195)
 
6. 어떤 숙의가 필요한가
- 집단 극단화의 결과로 도달된 견해가 반드시 잘못된 견해라는 것은 아니다. 옳은 견해여서 설득력을 발휘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집단 극단화가 단순히 사회적 영향과 제한된 논변 풀에 기인한다면 문제다. 이러한 사회적 동학 때문이 아니라 논변의 타당성force에 따라 개인과 집단이 움직이게끔 제도들을 설계해야 한다 -- 견제와 균형, 소수집단 대표성(group representation)
- 단순히 숙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숙의의 조건과 성격이다. 숙의 자체에 대한 옹호나 반대보다는, 집단 역동에 대한 이해와 숙의 집단의 구성 및 사전 성향에 주목해야.
 
[메모]
- 친구가 고맙게도 정치학과 수업에서 읽은 polarization 분야의 고전적인 논문이라며 추천해 줘서 재미있게 읽음
- 정치적 양극화가 공적 문제에 대한 건설적인 토론을 어렵게 하고 있고, 윤리적 시민교육의 중요한 과제는 개방적, 협력적 토론의 규범을 익히는 것이라는 문제의식(cf. 정창우 외, 2020: 143 -- 도덕 수업에서 건설적 논쟁 교육 필요성)
- 교실 토론이 생산적으로 전개되려면 어떤 설계가 필요한지에 대한 고려 사항을 많이 제시해 주는 듯
- 인용/피인용 경험연구들 확인해보고 연구 방법 참고하고 싶음
- 저자가 쓴 단행본도 많음. 그 중 특히 읽고 싶은 것:
Sunstein, C. R. (2009). Going to extremes: How like minds unite and divide. Oxford University Press.
Sunstein, C. R. (2019). How change happens. MIT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