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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삶의 방식: 피에르 아도,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

neon_eidos 2023. 3. 8. 19:43

요약: 생활양식으로서의 고대철학

  아도에 따르면, 고대철학은 이론적 담론이기 이전에 생활양식이었다. 생활양식은 한 사람이 행위하고, 존재하고, 세상을 보는 방식을 의미한다. 플라톤의 좋음을 사랑하는 삶’,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로티노스의 지성에 따르는 삶’, 에피쿠로스의 순수한 쾌락’, 스토아학파의 자연에 대한 승낙도덕적 의도등이 고대철학자들이 선택한 생활양식이다. 철학에서 생활양식의 선택은 이론적 담론에 우선하며 그 방향과 동기를 제공한다. 고대철학의 목표는 완성된 지식을 전달하는(inform)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형성하는(form) , 그가 행위하고 존재하고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 그의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었다.

 

  고대철학이 생활양식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중요한 맥락은 각 학파의 철학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실천되었다는 것이다. 학교는 단지 담론을 설하는 곳이 아니라 공동생활과 살아 있는 대화를 통해 어떤 삶의 양식을 실천하는 곳이었다.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삶의 양식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철학자가 시행하는 교육은 이론의 주입이 아니라 전인격적 변화를 가져오고자 하는 정신 지도(spiritual guidance) 내지 영혼 치유의 성격을 가졌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사람 마음에 대한 섬세한 이해를 발전시켰고, 권고·견책·위로·훈계 등 다양한 수단과 수사학을 활용했다.

 

  고대의 모든 학파들은 내적 변화를 위한 노력인 '정신 수련'을 실천했다. 모든 학파에서 명시적으로 단련(askēsis), 주의집중(prosochē) 등을 말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철학 전체가, 학파마다 담론의 내용은 상이할지라도, 본질적으로 동일한 정신 수련을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정신 수련은 자아 집중자아 확장이라는 두 가지 움직임으로 요약될 수 있다. ‘에 주의를 집중하면 나와 혼동되었던 욕망이나 육체 등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게 되고, 이와 동시에 더 큰 진정한 나를 발견한다. 죽음의 생각, 현재에의 집중, 개인적 관점에서 보편적 관점으로의 상승, 높은 시점에서 내려다보기 등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주제가 자아 집중 및 확장으로 설명될 수 있다. 자아 집중과 자아 초월을 통해 마음의 평정에 이른 이상적인 사람이 현자. 여러 학파에서 현자에 대한 유사한 서술을 찾을 수 있다.

 

  아도는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및 그 학파들, 헬레니즘과 제국시대의 학파들의 철학을 검토하여, 생활양식의 우선성이 모든 고대철학의 공통점이었음을 밝힌다. 또한 중세 이래 철학적 담론과 생활양식의 긴밀한 연관이 단절되며 철학이 이론화되는 경향이 나타났지만, 고대철학의 이상이 완전히 잊힌 적은 없었으며, 나아가 그것이 오늘날에도 추구해야 할 철학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고찰

  아도는 우리가 철학을 하는 본질적인 이유를 되새겨준다. 철학은 궁극적으로 삶을 검토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하는 활동이지, 이론적 천착이나 글을 쓰고 학위를 취득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관점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아도는 철학을 통한 삶의 변화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깊은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고대철학이 추구하는 것은 단지 기존의 세계관 안에서 자신의 믿음들을 더 정합적으로 만들거나 믿음과 행동을 정합적으로 만드는 수준의 변화를 넘어선다. 여러 학파에서 공통적으로 정신 수련을 통해 추구한 바에 대한 아도의 설명은 지혜라는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무엇, 규정 불가능한 초월적 이상이지만 또 무한정 열려 있지는 않은 무엇,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을 유혹하는 무엇이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오늘날의 제도 학교는 고대의 철학 학교들과는 달리 특정한 삶의 방식을 위해 수련하는 공동체가 아니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고대철학을 생활양식이라는 그 본래적 목표에 부합하게 이해하고, 개인이 원한다면 자기 삶에 받아들일 가능성을 가질 수 있게끔 가르치는 것은 가능하며 바람직하다. 따라서 고대철학을 가르칠 때에는 본래의 수사적 힘이 발휘될 수 있는 형태의 텍스트, 정신 수련을 따라 실행해볼 수 있는 텍스트, 그래서 추상적 정보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내적 공명을 허용하는 형태의 텍스트를 그대로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Hadot, P. (1995), Qu’est-Ce Que La Philosophie Antique?, Paris, Gallimard, 이세진 역(2017),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 파주: 열린책들.

Pierre Hadot, What is Ancient Philosophy?, M. Chase(tr.),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