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도덕·윤리교육론 기말고사 준비: 호프만 (교재4장)
정창우(2022). 호프만 공감 이론의 특성과 도덕심리학적 함의. 『변혁적 도덕 역량 증진을 위한 도덕교육론』. (pp.111-135) 교육과학사. +강의 조금 +자키, 블룸, 호프만 책 조금
1. 호프만의 기여
- 호프만은 공감이 친사회적 도덕성의 근간이라고 주장. (자키는 공감 능력이 자선 및 자원봉사 활동 등 친사회적 행동과 관계 있다는 경험적 근거를 통해 이를 뒷받침함)
- 호프만은 도덕적 동기에서 정서적 원천을 강조함으로써 콜버그가 강조한 인지적 원천에 집중되었던 기존 도덕심리학의 초점을 확장하는 데 기여
- 호프만은 공감의 여러 유형을 포괄적으로 분석. 자키(J. Zaki)는 더욱 명료하게 공감의 세 유형을 설명.
1) 타인이 느낀다고 여기는 바를 느끼는 ‘정서적 공감’(emotional empathy),
2) (타인의 감정을 자신이 직접 느끼지는 않으면서) 타인이 어떤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
3) 고통받는 타인을 돕고자 하는 실천적 관심인 공감적 염려(empathic concern) 또는 연민(compassion)
블룸은 공감의 세 차원이 서로 독립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정서적 공감을 폐기하고 인지적 공감과 연민으로 대체하자고 주장. 자키와 호프만은 정서적 공감에 머무르지 않을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정서적 공감이 인지적 공감과 연민의 기초가 된다고 봄.
2. 호프만 공감 발달 이론
- 공감적 각성의 방식을 기본적[또는 비자발적]방식(모방, 조건화, 직접적 연상)과 성숙한[고차적 또는 인지적] 방식([언어적으로]매개된 연상, [사회적]관점채택)으로 구분. 기본적 방식에서 성숙한 방식으로 이행하려면 정서에 더해 인지의 발달 필요
- 공감 발달의 6단계: [공감적 각성의 방식들이 인지발달과 결합하며 발생]
1. 전체적 공감(신생아의 반응적 울음)
2. 자기중심적 공감(타인의 고통과 공감적 고통 혼동)
3. 유사 자기중심적 공감(타인의 고통을 구별하지만, 자신을 위로하는 방식으로 타인을 위로) 등 유아기까지의 미성숙한 공감뿐만 아니라
4. 현실적 공감(어떤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 또는 일반적으로 느낄 만한 것을 느낌), 그리고 더 나아가
5. 당면 상황을 넘어선 공감(타인의 비참한 삶의 조건과 미래 전망에 대해 느낌)
6. 고통받는 집단에 대한 공감’(고통받는 집단의 삶의 조건과 미래 전망에 대해 느낌) 등 성숙하고 인간에게 고유한 공감까지 포괄적으로 설명.
- 미성숙한 단계의 공감은 성숙한 공감이 발달한 사람에게서도 여전히 작용하며, 성숙한 공감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
3. 인과적 귀인과 공감의 한계 및 개선책
- 공감이 친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여부는 인과적 귀인과 공감의 한계들의 영향을 받는다.
(1) 인과적 귀인
-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여 피해자의 고통의 원인을 어디에 귀인하느냐에 따라 공감적 고통은 축소 또는 무력화되거나 다른 공감적 정서로 변형될 수 있다.
1) 고통의 원인이 피해자 자신에게 있다면 공감적 고통은 축소 또는 무력화될 수 있다.
2) 고통의 원인이 피해자와 무관하다면 공감적 고통은 동정적 고통으로 변할 수 있다.
3) 관찰자가 피해자의 고통을 초래한 것이라면, 공감 기반 죄책감이 발생할 수 있다.
4) 피해자가 고통받을 만하지 않았다고 추론하게 되면, 공감적 부당함을 느낄 수 있다.
(2) 공감의 한계들
- 공감의 두 가지 한계: 공감 과잉 각성과 공감 편향
1) 의료 및 돌봄 종사자들이 호소하는 ‘연민 피로’로 대표되는 공감 과잉 각성 문제는 효과적인 도움 행동을 방해
2) 공감 편향: 가족과 친구 그리고 문화, 민족, 나이, 성별, 직업 등을[자신과 어떤 특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더 공감하는 ’친숙-유사성 편향’과 당장 눈앞에 있는 고통받는 개인에 집중하는 ’지금-여기 편향’ -- 내집단을 우선적으로 도우려는 진화적 경향과 관련.
* 블룸 보충: 블룸은 이러한 편향을 가진 공감을 좁은 면적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에 비유하면서, 비효과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행동을 낳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한다. 공감이 공정성이라는 도덕 규범과 충돌한다는 근거로 활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뱃슨과 동료들(Batson et al., 1995: 1042–54, 블룸, 2020: 1장에서 재인용)의 실험이다. 연구진은 치명적인 병에 걸린 10살 소녀 ‘셰리 서머스’의 이야기를 피험자들에게 들려주었는데, 피험자들 중 셰리의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보라는 말을 들은 집단은 치료를 먼저 받아야 할 아이들이 대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셰리의 순번을 앞당기기를 선택했다. 이외에도 블룸은 공감으로 인한 번아웃과 피로가 타인을 효과적으로 돕는 것을 가로막는 사례, 구체적 피해자에 대한 공감이 타 집단에 대한 폭력을 부추기는 사례 등을 제시하면서 공감이 그 자체로 도덕적 행동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블룸은 정서적 공감을 연민으로 대체할 것을 주장한다. 우리는 정서적 공감 없이도 연민과 합리적 판단에 의거해 도덕적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은 공감이 유일한 도덕적 원천이 아니라는 근거로 우리의 일상적인 도덕 판단의 사례들을 제시한다. 물에 빠진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해 굳이 물에 빠진 아이의 기분이 어떨지 상상할 필요는 없다. “말라리아에 걸린 수백만 명의 입장에 공감한다고 말하는 건 어색하지만, 그들이 걱정된다거나 그들에게 연민을 느낀다고 말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블룸, 2020: 1장) 이외에도 한 명의 아이가 백신 부작용으로 죽더라도 예방접종을 계속 시행해서 더 많은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판단, 그리고 아이에게 장기적으로 유익한 것을 위해 단기적으로 아이를 괴롭게 해야 한다는 판단(“그만 놀고 숙제해라.” “채소도 먹어야지.” “치과 가자”) 등은 공감이 아닌 지성과 연민의 산물이며, 이때 공감능력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블룸, 2020: 1장).
- 두 한계의 극복 방안
1) 공감 과잉 각성은 자기조절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 자기조절적 과정에는 선택적 집중이라는 인지전략, 피해자를 도울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 도덕적 또는 직업적 정체성, 도덕 원리의 활성화 등이 포함된다.
2) 공감 편향 역시 인지 리프레이밍을 중심으로 한 도덕교육, 공감과 결합된 도덕 원리, 귀납적 훈육 등을 통해 감소될 수 있다. 리프레이밍은 낯선 사람을 자기 집단 구성원으로 상상하여 친숙성의 범위에 들어오게 하는 방법이다. 또한 공감과 도덕 원리가 결합됨으로써 도덕 원리는 동기력을 지닌 ‘뜨거운 인지’로 변화되고, 공감적 정서는 도덕 원칙의 인지적 차원에 의해 구조와 안정성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귀납적 훈육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그것을 초래한 아동의 행동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메시지를 통해 공감적 고통을 유발하는 것이다.
- 호프만은 공감의 한계에 대한 대응 방안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잠재력 또한 제시: 도움 역할 정체성이나 도덕 원리에 대한 헌신과 결합된 공감 과잉 각성은 오히려 친사회적 행동을 강화하는 자원이 된다. 구체적인 피해자의 공감 유발 능력 또한 친사회적 목적에 기여할 수도 있다(Hoffman, 2000: 214). 호프만은 소방관이 폭격 피해로 죽은 아기를 안은 사진이 폭격 피해 집단에 대한 공감적 고통을 증가시켜 많은 사람들의 자원봉사와 기부 행위에 기여한 사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마땅한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라면, 지금 여기의 구체적인 사람에 대한 공감도 도덕적으로 의미 있는 기여를 한다는 것이다.
- 블룸은 공감의 한계를 근거로 공감을 도덕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호프만은 공감이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익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공감의 한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완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블룸은 우리의 도덕성이 정서적 공감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지만, 호프만이 보여주듯이 정서적 공감이 의도적으로 조절 가능한 것이라면, 그것을 전적으로 폐기할 필요는 없다.
4. 호프만과 콜버그 이론의 타당한 관계 설정: 도덕적 동기화를 중심으로
- 깁스(Gibbs, 2019)는 도덕심리학에서 도덕적 동기화에 관한 관점을 ’인지의 우선성‘ 관점과 ’정서의 우선성‘ 그리고 ’공동 우선성‘ 관점으로 분류하며, 공동 우선성 관점을 바탕으로 콜버그 이론과 호프만 이론이 ’상호보완적 관계‘라고 주장한다. 깁스는 한 도덕적 귀감의 사례를 통해 공감적 고통과 정의의 이상에 대한 위반 모두 도덕적 동기화의 원천이 됨을 설명한다. 깁스에 따르면, 인지와 정서는 친사회적 행동을 동기화하기 위해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며 상호 보완한다.
[원문 추천]
Gibbs, J. C. (2019). Moral development and reality: Beyond the theories of Kohlberg, Hoffman, and Haidt. Oxford University Press.
- 교재 여러 부분이 이 책에 기초함.
Hoffman, M. L. (2000). Empathy and moral development : implications for caring and justice. New York : Cambridge University Press.
Bloom, P. (2017). Against empathy: The case for rational compassion. Random House. (폴 블룸, 이은진 역(2020), 『공감의 배신』, 서울: 시공사.[전자책])
Zaki, J. (2019). The war for kindness: Building empathy in a fractured world. Crown. (자밀 자키, 정지인 역(2021), 『공감은 지능이다』, 경기: 푸른숲. [전자책])
[더 읽고 싶은 것]
De Waal, F. (2010).The age of empathy: Nature's lessons for a kinder society. Broadway Books.
[수업 및 생각]
- 한 칸트주의자 학생이 공감에서 비롯한 행위를 교육하는 건 의무에 들어맞는 행위를 교육하는 것일 뿐 의무의식에서 비롯한 행위를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고 비판했다(“도덕 심리학 이론을 활용하여 정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경험적 방식으로 학생들의 도덕적 동기화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도덕 교육에 있어 유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인간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학생들을 도덕의 자리에 데려다 놓기만 하는 것은 진정한 도덕적 성장을 가져오는 데에 한계가 있다. 학생들의 지적, 실천적 측면에서의 자율적인 변화가 수반되지 않고 도덕 심리학을 도덕교육에 적용하고자 한다면, 이는 칸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의 행위가 단순히 도덕법칙에 합치하도록 학생들을 교육하게 되는 것뿐이다.”).
이에 대해 교수님은 도덕 행동으로 나아가는 데 도덕 원리는 20% 정도밖에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셨다.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건 도덕적 동기화고, 더 어렵고 흥미로운 문제는 도덕적 정당화에서 공감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다.
난 의무에 들어맞는 행위는 진정한 도덕적인 행위는 아니더라도 진정한 도덕적인 행위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교육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대학원 과제물들과 달리 학부 과제물들은 교수님 입장과 훨씬 과감하게 대립해서 좋다. 위의 칸트주의자는 “깁스는 ‘공동 우선성’ 관점을 취하면서 ... 섞이기 어려운 두 이론을 실제로 융화시키지는 못했으면서 그저 양자를 갖다 붙여놓곤 마치 통합을 이룬 것처럼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고도 썼다. 통합, 균형, 상호보완을 지지하는 교수님 관점에 동화되기 이전의 목소리들이 좋다.)
- 한 유자 학생이 공감은 도덕의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도덕의 근간이 되기도 하며, 특히 인간 일반에 대한 공감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주장을 했다. 공감에도 종류가 있고 급이 있고, 심리학자들이 분석하는 세상 사람들의 공감 말고 공자 같은 도덕적 영웅들이 하는 초특급 공감도 있다.
[의문들]
- 공감이 발달적으로 도덕 원리보다 선행한다는 것으로부터 어떻게 도덕적 동기화의 원천이 인지가 아닌 정서라는 결론이 나오(p.119)는가?
- 성숙한 공감 단계가 어떻게 인지를 포함한다는 것인가? 관점채택은 인지적인 거라기보다는 정서적인 거 아닌가?
- “호혜성 위반에 대한 지식이 그 자체로 ... 행동을 동기화시키는”(p. 131) 거라고 해야 하는가? 원리에 대한 존중감 또는 의무의식(원리 또는 의무 자체가 아닌)은 지식이 아님.
- 좋음과 옳음이라는 말을 롤스와는 다른 의미로 쓰고 있다.
- 블룸은 공감이라는 말로 정서적 공감만을 가리키는 자신의 용법도 심리학계의 관례에 부합하는 것이며, 어떤 용어를 사용하든 무엇을 가리키는지만 명료히 하면 된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정신 작용들을 혼동하지 않고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블룸의 용법에도 이점이 있다. 블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검토하고 비판해야지, ‘블룸이 공감의 범위를 축소시킨다’고 비판하면 안 될 것이다.
- 오히려 도덕 행동 동기화는 의무의식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지만, 거기에 전제된 도덕 정당화는 끝내 누군가의 고통에 대한 공감에 의해 이루어지는 듯.
[지난 학기 과제물 중에서]
블룸은 정서적 공감이 잘못된 행동으로 나아간 사례들을 근거로 정서적 공감을 제거하고 이성적 도덕에 의존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잘못의 근원은 공감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행동에 대한 올바른 추론과 실천과 결합되지 못한 데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앞서 살펴본 뱃슨의 ‘셰리 서머스’ 실험의 경우, 셰리에 대한 정서적 공감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런 정서적 공감을 바탕으로 더 나은 추론을 하지 못한 데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정서적 공감이 올바른 추론과 결합한다면, 우리는 셰리에 대한 공감적 고통을 바탕으로 그러한 고통을 셰리뿐만 아니라 다른 소아 환자들도 똑같이 겪는다는 것을 고려할 것이고, 전체 소아 환자들의 고통을 완화하고자 하는 동기를 가질 것이다. ...
블룸은 공감을 좋은 행위를 동기화하기 위해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조차 거부한다. 블룸은 공감이 도덕의 필수적인 근간이 아니라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공감을 좋은 행동을 동기화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것조차도 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공감을 동기화의 원천으로 활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득보다 실이 전체적으로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공감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감정들이 좋은 행동을 추동하는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데 주목한다. 공감뿐 아니라 분노, 두려움, 복수심, 종교적 열정, 그리고 인종차별적 편견조차도 옳은 행동을 유도하는 경우가 있다. 블룸은 “인종차별과 같은 사고방식을 부추겼을 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부정적 효과가, 특별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긍정적 효과를 초월하기 때문”(블룸, 2020: 1장)에 인종차별을 거부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공감도 좋은 일을 위해서조차 활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감과 인종차별적 감정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인종차별은 그 자체로 부당하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좋은 목적에 기여하는 경우라도 인종차별적 감정에 대한 호소는 항상 비난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감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공감이 잘못된 목적에 기여하는 사례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비난하지만, 공감이 좋은 행동을 낳은 경우는 비난할 이유가 없다. 인종차별의 경우와는 달리, 공감이 부정적 효과를 낳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경우에 공감을 배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호프만의 이론에서 살펴보았듯이 공감은 유익한 방향으로 의도적으로 조절될 수 있다. 공감이 부정적 효과를 낳는 경우에 한해 공감을 완화하고, 공감이 긍정적 효과를 낳는 경우에는 공감을 독려하는 것이 온당한 해법이다.
3. 결론: 공감 교육의 방향
정서적 공감만으로 세상의 문제들이 해결될 수는 없다는 블룸의 경고에는 타당한 면이 있다. 공감 교육은 눈앞의 타인의 고통을 그대로 느끼도록 유도하는 데서 그치면 안 된다. 이는 블룸과 호프만이 공히 주장하는 바다. 하지만 이는 정서적 공감을 교육에서 배제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블룸이 정서적 공감에 대해 제기한 문제들은 공감의 의도적 계발과 조절을 통해 대응할 수 있는 것이고, 정서적 공감은 인지적 판단과 결합함으로써 올바른 방향과 적절한 강도를 취하면서 인지적 판단의 동기적 힘을 강화할 수 있다. 정서적 공감은 블룸이 주장하듯이 인지적 원칙에 의거한 행동과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호프만이 주장하듯이 인지적 원칙과 결합함으로써 효과적인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 도덕교육은 인지적 판단 교육뿐만 아니라 그 판단을 추동하고, 또 그 판단을 실행으로 옮기도록 동기화하기 위한 정서적 공감 교육을 포함해야 한다. 상대의 입장을 느끼고, 이해하고, 돕기 위한 공감 수준의 향상을 위한 교육도 필요하고, 누구에게 어떻게 공감해야 하는지 알기 위한 도덕적 판단 교육도 필요하다. 정서적 공감은 폐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적 판단을 근거로 올바른 방향과 강도로 조절되어야 하는 것이다. 블룸은 공감을 ‘절대선’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비판하고 그것을 ‘절대악’으로 전락시켰지만, 공감은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라 마땅한 방식으로 유도되고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할 때, 또 마땅히 그래야 할 일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사람들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목적을 위해서, 또 마땅히 그래야 할 방식으로 감정을 갖는 것은 중간이자 최선이며, 바로 그런 것이 탁월성에 속하는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2권 6장 1106b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