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민주주의 개관 (2) 김주형(2018), 임동균·나윤영(2021), 임동균(2018)
계속해서, 이론적 배경에 활용하기 위한 필수적인 문헌들을 정리한다.
정리의 원칙: 요약하기 귀찮거나 표현을 참고하고 싶은 부분은 긁어 복붙해 놓는다. 중요하고 흥미롭더라도 내 논문에 필요없는 내용은 건너뛴다. 내가 패러프레이징한 부분은 음슴체로 작성한다.
1. 김주형(2018). 숙의와 민주주의: 토의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본 공론화위원회. 현대정치연구, 11(3), 69-104.
[나의 요약: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숙의 포럼을 갈등관리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에 반대하며, 숙의 포럼을 민주주의와 사회 전반의 토의 역량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주장함. 미니공중 내부에서의 숙의가 토의민주주의의 문제의식 전반을 대표하지는 않음. 숙의 포럼에 대한 평가에서는 특정 사안에 대한 탁월한 합의를 도출했는지 여부보다는 사회 전체에서 풍부한 토의가 이루어지는 데 기여했는지, 민주적 정당성을 제고했는지가 기준이 되어야 함.
숙의 공간 내부의 동학이 각종 왜곡에 취약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지만, 그간 축적된 경험연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하지 않음. 토의민주주의자들은 숙의가 학습과 숙고를 발생시킨다고 주장하지만, 집단 숙의의 과정은 인지적 왜곡과 배제를 발생시킨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됨. 하지만 왜곡된 숙의의 문제는 조심스러운 제도 설계를 통해 해소될 수 있음.]
I. 머리말
- 우리 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두 차례의 공론화위원회 활동: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이하 ‘신고리 위원회’)와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이하 '대입개편 위원회') - 평가는 엇갈림
- (p. 71) "한국의 공론화위원회를 포함하여 토의민주주의의 다양한 실험과 실천 전략이 세계 각국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배경에는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기존의 대의제 하에서 일반 시민들이 느끼는 정치적 소외감이 무관심과 무지, 효능감 저하로 연결되고, 이것이 정치권에 대한 넓고 깊은 불신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은 이제 매우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증진할 다양한 혁신 방안이 제안됨. "토의민주주의에 대한 관심 또한 정치 엘리트들과 조직된 이해집단이 장악하고 있는 기존의 정치과정에 충격을 가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그 균열을 증폭시키면서 민주주의의 재활성화를 위한 돌파구를 모색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 그런데 한국에서는 공론화위원회가 갈등관리 기구나 사회적 합의 도출 기구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신고리 위원회는 절묘한 타협안(공사를 재개하는 동시에 안전기준을 강화하고 신재생 에너지 투자를 확대한다는 정책 권고 채택)을 도출했다는 점 때문에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받았고, 대입개편 위원회는 이렇다 할 타협안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음. "하지만 공론화위원회의 활동과 토의민주주의 전반에 대한 평가가 갈등 사안에 대한 절충안 도출 여부에만 집중되어서는 곤란하다. 즉 공론화를 논쟁적인 현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정책적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라는 것이다. 대신 이 논문은 공론화위원회의 위상과 역할 등을 균형있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애초에 그것이 자라나온 토의민주주의에 대한 보다 넓은 논의의 맥락에 위치지을 필요가 있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물론 논쟁적인 사안에 대한 갈등관리 기제로서 공론화와 공론조사는 중요한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토의민주주의의 문제의식 전반을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한두 차례의 ‘성공’ 사례가 향후 복제 가능한 모델을 제시해주지도 않고, 반대로 몇 번의 ‘실패’가 공론화나 토의민주주의 일반의 무용성을 입증한다고 볼 수도 없다. 즉 특정 사례의 성패에 집중하기보다는, 이러한 숙의 포럼의 시도가 보다 넓고 길게 한국의 민주주의에 어떠한 기여를 하고, 또 어떠한 이론적, 실천적 함의를 갖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컨대 갈등관리보다는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혹은 우리 사회 전반의 토의 역량의 관점에서 공론화 시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아래의 논의는 그간 진행된 토의민주주의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와 종합을 통해 이렇게 시야를 확장하였을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두 가지 논점을 다룬다."(pp. 72-3)
II. 용어와 개념
- 토의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학계뿐만 아니라 언론과 시민사회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토의민주주의의 중심적인 용어와 개념은 논자에 따라 내용적으로도 다양하게 구성되고, 당장 표준적으로 정착된 우리말 표현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이관후 2018a)"(p. 74).
- "공론화위원회는 숙의 포럼(deliberative forum)의 형태로 토의민주주의를 제도화하려는 ‘미니공중(minipublic)’의 시도 중 하나로 분류할 수 있다."(p. 75) 지난 수십년 간 세계 각국에서 다양하게 진행되어 온 숙의 포럼의 실험은 조직과 운영의 주체(정부, 비정부단체, 자발적 시민 그룹 등), 참여 대상 선정(무작위 선별, 자발적 참여), 이해당사자 참여 여부, 위상(정책 권고 역할인지, 아니면 의회나 정부에서의 공식적인 의결 과정과 연계되는 결론 도출을 목표로 하는지)에 따라 유형을 분류할 수 있음. "다양한 시도들 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형태로 는 시민의회(Citizens’ Assembly), 계획심의회(Planning Cells), 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 시민배심원단(Citizens’ Jury),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 등이 있다(Coleman et al. 2015; Fung 2003; Gastil and Levine 2005; Geissel and Newton 2012; Goodin 2008; Nabatchi et al. 2012; Smith 2009). 한국의 공론화위원회는 무작위추출에 의해 선출된 시민참여단이 구성되고, 일정한 기간 동안의 숙의를 거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공론조사를 시행한다는 점에서 피시킨(James Fishkin) 이 고안한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다."
- ‘deliberation'과 'deliberative democracy'의 우리말 번역 문제: "다음으로 ‘deliberation'이나 'deliberative democracy'를 우리말로 어떻게 옮길지 는 좀 더 까다로운 문제이다. 번역어를 채택하는 문제는 이러한 개념들이 담고자 하는 문제의식에 대한 해석을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이관후(2018a)의 논문이 이와 관련해 유용한 개괄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긴 부연 없이 몇 가지만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deliberation’의 번역으로는 ‘숙의’가 대체로 정착된 것으로 보이는데, 아래에서도 대체로 ‘숙의’를 채택하되 경우에 따라 ‘토의’를 번갈아 쓰기도 하였다. 하지만 ‘deliberative democracy'의 가장 좋은 번역이 ‘숙의민주주의’인지는 어려운 문제이다. 이 논문에서는 대신 ‘토의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선택하고자 한다. 대안 중에서 최근에는 덜 쓰이는 경향이 있지만 ‘심의민주주의’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딱딱하고 공식적인 함의를 지닌다. ‘심의’는 일반적인 용례에서 의회나 국무회의와 같은 정부기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숙의민주주의’는 현재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표현이 되었지만, 정해진 틀 내에서의 심사숙고, 특히 비교적 소규모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한 사안에 대해 깊이 천착하는 이성적 과정이 부각되는 경향을 보인다.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공간 속에서의 ‘숙의’에서 이 측면이 중요한 구성 요소인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와 같은 미니공중 내부에서의 숙의가 토의민주주의의 문제의식 전반을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 글의 주장이기도 하다. 아래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보다 다양한 표현과 교환의 양식과 계기, 사회 전반에서 진행되는 다층적인 시도와 실험 등을 포괄하기 위해서는 좀 더 유연하고 상호적, 소통적 함의를 가질 수 있는 ‘토의민주주의’가 더 나은 선택지로 보인다(이영재 2004; 2010)."(p.76)
III. 왜곡된 토의의 문제
첫째, 숙의 공간 내부의 동학 문제: "과연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집단적 숙의 공간 내부의 동학과 그것이 참가자들에게 미치는 효과가 토의 민주주의자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건강하고 긍정적인가", "집단적 숙의의 과정이 그 주창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인지적 학습과 진정성 있는 의견교환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집단 동학과 그 기저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의해 왜곡된다는 비판"
"숙의 공간 내부의 동학이 각종 왜곡에 취약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이 문제가 집단적 숙의와 토의민주주의의 문제의식 전반을 무너뜨릴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왜곡의 문제는 특히 조심스러운 제도 설계를 통해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p. 96)
- (p. 77) 토의민주주의자들은 "공적 사안에 대한 정보제공과 의견 교환을 통해 시민들은 문제에 대해 보다 균형 잡히고 숙고된 견해를 형성하게 되고, 그 결과 질적으로 향상된 정치적 판단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하고, "설령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 일치(consensus)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상호 수용 가능하고 보다 합당한 결론이 도출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이처럼 "열린 토론과 의견 교환을 통한 상호정당화의 과정을 정치적 결정의 중심에 둠으로써 강제나 강압, 조작이나 선동, 무분별한 추종이나 무원칙한 협상 등의 병리적인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려 한다(Cohen 2009; Gutmann and Thompson 2004)". "하지만 다수의 비판자들은 집단적 숙의의 과정이 ‘사려 깊음(thoughtfulness)’ 을 극대화하지도 않고, 도출되는 결과의 측면에서도 토의민주주의자들이 기대하는 것과 같은 긍정적인 효과를 낳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비판을 종합하여 ‘왜곡된 숙의(deliberative distortions)'의 문제로 명명하고자 하는데, 토의민주주의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여러 갈래의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 문제제기를 질문의 형태로 포함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의구심의 표출이다. 참가자들이 토의의 과정 속에서 과연 자신의 선입견이나 비합리적 동기에 휘둘리지 않고 사실관계에 충실하고 성찰적인 판단을 내릴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가? 그 결과 서로 입장의 차이만 확인하거나 심지어 갈등이 증폭되기보다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공적 마인드가 증진될 것인가? 심각한 의견불일치의 상황에서 집단적 숙의를 통해 합의 내지는 상호 수용이 가능한 결론이 도출된다고 믿을 근거가 있는가? 여러 논점이 제기되지만, 숙의 공간 내부의 동학에 대한 회의는 대체로 인지적 왜곡의 문제와 배제의 문제 둘로 나뉘어진다."
- 인지적 왜곡의 문제 1: "인지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견해와 상충하는 정보나 주장을 접할 때 그 정보의 타당성이나 주장의 설득력 여부와 관계없이 기존의 입장이나 편견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취사선택하는 경향이 넓게 관찰된다[...]. 만약 이러한 관찰이 사실이라면 토론을 통해서 보다 사실관계에 부합하고 균형 잡힌 집합적 결론이 도출될 것이라는 믿음은 지나치게 낙관적일 수 있다는 비판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제기는 인지과정 일반에 대한 것으로, 미니공중에서와 같은 집합적 숙의의 과정이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고 볼 근거는 딱히 찾기 어렵다."
- # 숙의가 사정을 악화시키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숙의에서도 그런 사정이 적용된다면 숙의의 목적 달성이 어려워진다는 게 문제인 듯. 이에 대해서 오히려 잘 숙의된 숙의는 개별적 사고의 편향을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반박하는 게 중요한 듯.
- # 숙의가 사정을 악화시키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숙의에서도 그런 사정이 적용된다면 숙의의 목적 달성이 어려워진다는 게 문제인 듯. 이에 대해서 오히려 잘 숙의된 숙의는 개별적 사고의 편향을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반박하는 게 중요한 듯.
- (pp. 78-79) "인지적 왜곡의 문제와 관해 보다 영향력 있는 비판은 선스타인(Cass Sunstein)이 제기한 바 있다(Sunstein 2002; Mendelberg 2002). 이른바 ‘집단극화(group polarization)’의 문제인데, 집합적 숙의의 과정이 토의민주주의자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참여자들의 전체적인 견해를 더욱 극단화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이다. 즉 숙의의 과정을 거치면 견해가 온건해지거나 다양해져서 중도로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주장, 그 중에서도 특히 극단적 견해의 방향으로 참여자들이 이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선스타인에 따르면 이러한 극화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동학은 평판과 자기인식 등 인정(social recognition)의 문제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집단의 구성원들 및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로 비춰지고 싶어 하는데, 이러한 심리적 정향이 논쟁적인 사안에 대한 선명하고 극단적인 주장이 갖는 수사적 유리함과 결합되어, 애초의 의견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한쪽으로 더욱 기우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요컨대 정보교환과 토론의 과정을 거쳐서 도출되는 집합적 판단이 겉으로는 학습과 숙의의 결과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비인지적이고 비합리적인 심리적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주장이다."
- (p. 79) "토의민주주의에 대해 자주 제기되는 두 번째의 비판은 배제와 불평등의 문제이다(Lupia and Norton 2017; Sanders 1997; Shapiro 1999, 2017; Walzer 1999; Young 1996, 2001). 영(Iris Marion Young)을 비롯한 다수의 비판자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미묘한 형태의 배제에 특히 주목한다. 특정한 사회 집단이나 개인을 사회적 논의의 장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형태의 차별은 대부분의 민주 국가에서 예전보다 드물게 관찰된다. 설령 그런 경우가 존재하더라도 이에 대한 대응은 주어진 법과 제도 하에서 다방면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판자들은 이보다 감지하기 어려운 형태의 차별에 주목하는데, 이른바 ‘내적(internal) 배제’ 혹은 ‘비공식적 배제’의 문제이다(Young 2001). 우선 ‘말하고 듣는 방식’의 문제가 있다. 토론의 공간에서 흔히 관찰되는 현상 중 하나는 말투, 복장, 외모, 성별 등의 외적인 요인이 주장 자체의 설득력으로 연결되는 경향이다. 예컨대 특정 지역의 사투리를 심하게 구사하는 어리숙한 외모의 노년 여성의 주장보다는, 깔끔한 옷차림과 차분한 어투를 가진 중년 남성의 주장에 사람들이 더 쉽게 설득당할 것이라는 문제제기이다. 문제는 이러한 요인들에 있어서의 차이가 근저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반영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토론의 공간에서 이성적 논증, 논리적 일관성, 증거에 기반한 단계적 주장 등의 말하기와 듣기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과 교육수준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pp. 79-80) 이어서 더 깊고 구조적인 형태의 불평등으로는 숙의의 조건과 내용의 제약이 있음. "미니공중과 같은 공식적인 숙의의 장에 부쳐지는 사안의 범주는 애초에 관련된 문제에 대한 급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제기를 원초적으로 배제하는 제한된 대안만을 선택지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 의제 설정의 역량이 사회적으로 불평등하게 배분된 것은 곧 관련된 문제에 대한 헤게모니적 담론이 존재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참가자들 스스로가 분명하게 인지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의 선호나 가치관이 이러한 헤게모니 속에서 체계적으로 왜곡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 (p. 80) "비판자들의 입장에서 이러한 다층적인 배제의 문제는 결국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로 환원된다. 이성, 합리성, 보편성 등에 대한 강조는 결국 특정한 사회문화적 자본을 축적한 집단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 측면에서의 차이는 곧 기저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이성적 토의와 합의를 강조하는 토의민주주의자들은 공적 토론의 조건과 내용이 권력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측면을 충분히 민감하게 포착하지 못하는 “반정치적 편견”에 빠져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Walzer 1999, 67). 우리 시대의 가장 시급한 정치적 문제는 토의의 불충분이 아니라, 민주주의 정치과정이 강력한 사적인 이해관 계과 엘리트들의 담론장 장악에 의해 구조적으로 왜곡되어 있다는 점이라는 주장이기도 하다(Shapiro 2017). 이상의 비판적인 문제의식은 구조적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차분한 토의보다는 부당함에 분노하고 정의를 달성하려는 열정을 가진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와 조직화, 직접행동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자주 이어진다."
- (pp. 80-81) "지금까지 약술한 인지적 왜곡과 배제의 문제는 집합적 숙의의 내적 동학에 대한 심각한 문제제기이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승인과 같은 비인지적, 비합리적 선호 형성 메커니즘이,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가 숙의의 공간으로 침투하여 그 과정과 결과를 왜곡시킨다는 비판이다. 그렇다면 집합적 숙의의 결과물이 사실관계에 보다 충실하고 성찰적인 판단이라고 기대할 근거가 훼손될 것이다. 기존의 편견이나 선입견이 증폭되면서 유의미한 견해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거나, 설령 숙의 과정 속에서 의견의 변화가 관찰되더라도 그것이 사회적 압력과 권력관계, 불평등이라는 비숙의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 것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p. 81) "하지만 토의민주주의자들은 이 각각의 비판에 대해 설득력 있는 반박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 그간 상당히 축적된 경험적 사례에 대한 연구결과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잠정적인 결론이 가능하다(Bächtiger and Simon Beste 2017; Curato et al. 2017; Fishkin 2012; Siu 2017; Thompson 2008). 우선 위에서 언급된 인지적 비합리성과 불평등에 관한 쟁점들은 일반화된 결론 도출이 상당히 어려운 형태의 문제로서, 왜곡된 숙의의 패턴을 보여주는 몇몇 사례에 대한 분석이 숙의 포럼의 무용함을 정당화하기는 힘들다. 실제로 토의민주주의자들은 비판자들의 주장이 경험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점을 역으로 지적한다. 예컨대 이들은 숙의 과정 속에서 참가자들의 견해 변화가 상당히 유의미한 수준으로 관찰되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관련 사안에 대한 지식 증가나 공적 마인드 함양, 반대의견에 대한 존중 등으로 연결되는 패턴이 매우 일관되게 관찰 된다고 보고한다. 심지어는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의 골이 상당히 깊은 사회에 서도 집단적 숙의가 상호 인정과 이해, 경우에 따라서는 타협안의 도출과 연대감의 형성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다수 존재한다고 한다. 또 불평등이나 극화에 의한 왜곡을 보여주는 사례보다 사회경제적 특권층과 헤게모니적 담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토의 과정을 통해 오히려 증폭되는 사례가 더 많고, 더 나아가 전통적인 소외계층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효과 또한 견고하게 관찰된다고 한다(Gutmann and Thompson 2004, 42-43; Young 2000, 35-36).
- (p. 82) "토의민주주의자들의 반박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숙의 공간의 구체적인 제도설계에 따라 위의 논점들과 관련해서 큰 편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참가자들의 선정에 왜곡이나 편향이 없는지, 의제 설정을 얼마나 명확하게 하는지, 분임토의를 이끄는 모더레이터(moderator)가 얼마나 공정하고 능숙하게 토의를 진행하는지, 참가자들에게 발언의 기회가 공정하고 실질적으로 보장되는지, 과정 전반에 대한 공개성과 투명성을 어느 수위에서 유지하는지, 전문가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하는지 등의 문제가 숙의 과정의 왜곡과 편향을 최소화하는 데에 특히 중요한 것으로 보고된다. 이 각각의 문제는 물론 숙의의 공간을 설계하고 운영할 때 실무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토의민주주의 전반의 문제의식을 살려내는 것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충분한 준비 없이 시작되고 어설프게 진행된 숙의 포럼의 사례를 통해 집합적 토의 자체의 무용함을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축적된 사례와 실험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면 숙의가 전혀 쓸모가 없거나 심지어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일반화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적어도 숙의 공간 내부의 동학과 관련하여서는 토의민주주의의 규범적 호소력, 실천적 잠재력 및 적용가능성은 여전히 기각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IV. 숙의와 민주주의
둘째, 숙의 공간 내부와 외부의 관계에 대한 문제: 내부의 숙의가 외부, 즉 사회 전반의 토의 역량과 어떻게 연계되는가(‘참여’와 ‘숙의’의 긴장관계, ‘숙의(deliberation)’와 ‘민주주의(democracy)’ 사이에 긴장 내지 충돌). 민주주의이론의 관점에서 더 중요한 논점.
"갈등관리와 사회적 합의 도출을 목표로 하는 ‘정책과정’의 한 부분으로서의 공론화위원회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와는 초점을 달리하여 민주주의와 사회 전반의 토의 역량의 관점에서 공론화위원회를 포함한 미니공중의 위상과 역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숙의 공간 내부와 외부의 관계 또한 이론과 실천에서 공히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주제이다."(p. 96)
"토의민주주의의 한 구성요소인 ‘숙의’가 인지적인 측면에서 토론과 판단의 질에 우선적인 관심을 갖고, ‘민주주의’가 참여적인 측면에서 시민들의 관심과 관여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춘다고 할 때, 숙의와 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동행한다는 생각은 분명히 재고의 여지가 있다. 특히 공론화위원회를 비롯한 미니공중의 시도에서는 일반적으로 ‘숙의’의 가치가 ‘민주주의’를 압도하는 경향을 보인다."(p. 97)
- 숙의와 참여의 길항관계 가능성은 "비교적 초기부터 토의민주주의자들 스스로에 의해 제기되어 왔다(Ofife and Preuss 1991, 167; Thompson 2008). 최근에는 피시킨도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의 전통에서 포괄성(inclusiveness)와 사려 깊음(thoughtfulness)의 두 가치가 결합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공론조사를 통해 이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Fishkin 2009). 참여와 숙의의 갈등에는 두 측면이 있다. 만약 일반 시민들을 넓게 포함시키고 이들에게 사안에 대한 결정권을 부여하는 데에 집중할 경우, 자칫 차분한 숙의가 어려워지면서 이성적인 토론과 균형 잡힌 판단을 방해할 수 있다. 참여의 극대화가 숙의의 결핍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숙의의 질과 사려 깊은 결정에만 너무 초점을 맞출 경우, 시민참여단이 외부의 일반 대중들과는 유리된 다른 의미의
엘리트 집단처럼 기능할 위험성이 있다. 숙의의 가치가 확보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표성과 정당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참여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다."(p. 83) 전자의 문제의식에 기초해 "소수의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꼼꼼하게 기획된 틀 속에서 숙의를 운영함으로써 차분하고 정제된 견해의 형성을 유도하는"(p. 84) 미니공중 설계가 탄생한 것으로 볼 수 있음. 반대로 "참여에 방점을 찍으면서 숙의에 대한 지나친 강조를 우려하는" 입장에서는 "근거제시와 상호정당화를 통해 집합적 결정의 질을 향상시키고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토의민주주의의 전반적인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도, 숙의의 공간이 소수의 시민참여단으로 구성된 미니공중이나 시민의회에 국한되는 경향에 제동을 건다. 즉 이들은 공론화위원회처럼 특수한 목표를 가지고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인위적인 숙의의 공간보다는 정치적 공론장 전반으로 시야를 확대할 것을 요청한다. 이 주장을 더 면밀히 검토하기 위해 아래에서는 페이트만(Carole Pateman)과 라폰트(Cristina Lafont)의 논변에 주목한다."(p. 84)- # 교실 숙의는 미니공중보다 숙의는 덜 엄격하더라도 참여를 확대.
- 페이트만(Pateman 2012): 미니공중은 "모든 시민에게 권리로서 열려있지 않고, 특정한 사안에 대해 일회적 내지는 간헐적으로만 운영되며, 가장 중요하게는 결정권을 결여한 자문 내지는 정보 제공의 역할에 머문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짐(p. 87). 강한 참여민주주의를 보여준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와 대조적으로, 세계 각지에서 시도된 참여예산제의 사례들은 "시민들의 참여가 당연한 권리로서 모두에게 열려 있기보다는 주최측이 정한 기준에 따라 특별히 선발되어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나마 참여하게 된 시민들조차도 사안에 대해 결정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행정관료나 정치인들이 실질적인 결정을 내리기 전 단계에서 여론의 향방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거나 정책적 조언을 하는 역할에 그친다는 것이다. 심지어 정권이나 정당, 정치인들이 이미 내린 결론에 힘을 실어주는 보여주기 식 이벤트로 전락하는 경우도 상당하다는 것이 페이트만의 지적이다. [...] 이런 식의 비정규적인 정책권고 역할 정도가 결국 토의민주주의가 제도화되는 방식이라면, 이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며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델로 칭송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보다 일반적으로, 공론화위원회처럼 특정한 사안을 다루게끔 일회성으로 조직되는 미니공중은 결과적으로 좀 더 큰 규모의 포커스그룹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본인이 내세우는 참여민주주의의 비전과 거리가 먼 것은 물론이고, 실상 기존의 대의제 하에서 일반적으로 정착된 정치과정 및 제도와의 차별성도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p. 85) 페이트만의 참여민주주의 비전(Pateman 1970)은 "‘민주주의의 민주화’라는 명제로 집약될 수 있다. 여기서의 ‘참여’는 투표나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의견 표명 같은 활동이 아니라, 특정한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함께 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강한 의미의 참여는 곧 그 공동체의 상호작용의 조건을 구성하는 권위 구조가 구성원들에 의해 직접 형성된다는 것을 뜻한다. 페이트만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좁은 의미의 권력의 소재지를 넘어서 일터, 가족, 고등교육기관을 비롯한 사회 전반의 권위구조가 민주화된 사회를 ‘참여적 사회(participatory society)’라고 부르며, 이를 실현하는 것이 민주적 정체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역설한다. 참여를 통한 권위구조의 민주화가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이유는 바로 이를 통해서만 시민들이 그들의 삶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조건과 환경을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집합적 자기결정(collective self-determination)의 의미라는 것이다."(pp. 86-87)
- 라폰트(Lafont 2015; 2017): "실제 시민들의 극소수로 인위적으로 조직되어 외부와 단절적으로 운영되는 미니공중에서의 숙의가 갖는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p. 87)를 제기함. 미니공중이, 특히 정책적 결정권을 갖는 경우,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를 낳는다고 비판함. "피시킨을 비롯한 주창자들은 미니공중의 제도화를 통해서 토의민주주의의 두 핵심적인 가치, 즉 높은 숙의의 질과 민주적 대표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즉 무작위 추출과 통계적 보정 방식을 통해 인구학적 대표성을 갖춘 시민참여단이라는 소우주를 구성함으로써 민주적 대표성을 달성하고, 정보제공과 토론이 이루어지는 숙의라는 여과장치를 통해 사려 깊음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거울(mirror)’과 ‘필터(filter)’의 동시 작동이다(Fishkin 2009). 그러나 라폰트는 이 주장이 허구라고 비판한다. 핵심적인 이유는 미니공중에서의 토론과 결정이 ‘실제 시민들(actual people)’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추출된 ‘반사실적 시민들(counterfactual people)’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사실 우연한 계기로 미니공중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이 통계적, 인구학적 범주 말고는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굳이 없고, 또 그들이 내려진 결정에 대해 정치적, 법적 책임을 떠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내가 그들의 결정을 곧 ‘나의 결정’이라고 간주해야 할 이유가 딱히 없다는 것이다. 정작 나는 숙의가 이루어지는 자리에 있지도 않았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설득하려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면 시민참여단이 내린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해야 할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곧 라폰트가 말하는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이다. 숙의라는 ‘필터’를 거친 이후의 시민참여단은 어디까지나 실제 시민들의 프록시(proxy)일 뿐, 시민들 자체와 동일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미니공중을 통해서 ‘숙의’와 ‘사려 깊음’의 가치는 보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참여’와 ‘민주주의’의 측면에서는 꽤나 문제적인 상황이 발생한다."(pp. 85-86) 라폰트의 대안은 “보다 참여적인 토의민주주의”(Lafont 2017, 95)로, "논쟁적인 사안을 돌파하기 위해 미니공중과 같은 지름길에 의존하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 전체의 토의 역량을 키우는 방도를 모색하자는 주장이다. 결국 민주적 정당성을 위해 중요한 것은 집합적 결정의 수신자가 되는 시민들이 그 결정을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 제시와 정당화의 포괄적인 과정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 때의 참여는 반드시 페이트만의 경우에서처럼 결정권의 행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사회적 토의와 영향력 행사의 과정을 포괄하는 것이다. 미니공중은 이러한 사회적 토의에서 중요한 축을 형성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정치적 공론장에서의 토의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이유로 라폰트는 토의민주주의의 문제의식이 미니공중의 형태로 국한되어 제도화되는 경향에 반대한다. 물론 미니공중이 유용한 경우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산물이 시민사회 전체의 토의 활성화에 기여하며 정치적 영향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사회 전반의 토의 역량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민주적 정당성은 물론 토의민주주의 실험 자체의 자생력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pp. 87-88) 시민들 각자가 스스로 사회적 논의에 참여할 기회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다면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미니공중 시도는 결정 과정에서 시민들을 배제하하게 됨 -> "만약 이런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공론화가 결국 정치적 부담을 전가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서 논쟁적인 이슈의 외주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나,심지어는 이미 내려진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얄팍한 술책이라는 익숙한 비판이 더욱 증폭될 수 있다. 숙의 포럼 내부와 외부 공론장의 연계를 강화하는 과제는 토의민주주의의 이론과 실천에서 공히 핵심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p. 98)
- (p. 88) "사실 라폰트와 유사한 문제의식에서 토의민주주의의 확장적 이해를 주장해 온 논자들은 더 있다. 체임버스(Simone Chambers)나 드라이젝(John Dryzek)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체임버스 역시 기존의 토의민주주의의 이론과 실천 양 측면에서 공히 ‘민주주의’보다는 ‘숙의’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숙의를 ‘대중 민주주의(mass democracy)’의 차원으로 적극 끌어올 것을 주장한다(Chambers 2009; 2012). 일회적으로 조직된 공간이나 엘리트 중심의 기구에서 질 높은 토론과 지혜로운 결론 도출에 몰두하게 되면 일반시민들로부터 절연된 폐쇄된 공간 속의 ‘숙의’만 남고 ‘참여’와 ‘민주주의’가 뒷전으로 밀려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체임버스는 선거 캠페인, 국민투표, 미디어 등의 다른 정치과정과 제도가 얼마나 숙의적인지를 또한 따져 물을 것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토의 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 및 참여민주주의와 보완적으로 작동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러한 곳들이 애당초 숙의의 공간이 아니라고 치부하게 될 경우, 사회 전반에서 얼마나 유의미한 토의가 이루어지느냐의 중요한 문제를 원천적으로 배제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 (p. 88-89) "드라이젝도 유사한 문제제기를 통해 ‘토의 역량(deliberative capacity)’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Dryzek 2009). 권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집합적 의사결정이 사회 전반에서 다층적으로 진행되는 담론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주목하는 견해이다. 드라이젝은 공론장(public space), 권한 공간(empowered space), 전달(transmission), 책임성(accountability), 결정성(decisiveness), 메타합의(meta-consensus) 등 여섯 가지의 초점을 제시하고, 각각의 공간과 기제가 진정성과 포용성을 확보하고 있는지, 이들 사이의 환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그리하여 숙의 과정 전반이 집합적 의사결정에 유의미한 영향력(consequentiality)을 행사하는지 등의 문제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분석할 것을 제안한다. 드라이젝은 이 분석틀이 비교사례연구를 위해 활용되어, 궁극적으로는 기존의 정량적인 지표에 의존하는 방식을 탈피해 보다 본격적으로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심화의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 (p. 89) "이상의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면 공론화위원회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 또한 보다 다각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논문의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론화위원회를 특정 사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을 목표로 하는 갈등관리 기구로만 인식하게 될 경우, 자칫 몇 달 동안 진행된 숙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인 논쟁을 잠재울 수 있는 묘안이 결론으로 도출되었는지의 문제에만 집중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 하지만 방금 살펴본 논자들의 주장에서 보듯이 공론화위원회처럼 제한된 시공간에서의 숙의가 사회 전체의 숙의 역량과 민주적 정당성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의 문제에 천착하게 되면 논의의 초점은 사뭇 달라진다. 공론화 과정이 얼마나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였고, 어떤 방식으로 유의미한 정보와 논점을 제공하며 그 사안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와 판단력을 향상시켰으며, 결과적으로 도출된 결론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어떠한 정도의 수용성과 정당성을 부여하였는지 등을 묻게 되는 것이다."(p. 89)
V. 토의민주주의의 이론과 제도화에 대한 함의
- (pp.90-1) "사회전체의 토의 역량을 강조하는 최근 논의의 이론적 토대를 하버마스의 민주주의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는 해석": 하버마스가 『사실성과 타당성』에서 발전시키는 이른바 '토의정치의 이중궤도 모델(the two-track model of deliberative politics)’은 의회를 중심으로 한 공적인 결정기관인 이른바 ‘강한 공중(strong public)’ 내지는 ‘중심부(core)’와, 시민사회와 공론장으로 구성되는 ‘약한 공중(weak public)’ 내지는 ‘주변부(periphery)’를 구분하면서, 두 트랙 각각의 역할과 아울러 둘의 연결 내지는 상호작용에 주목함. 토의정치에서 '권력의 선순환'은 ‘약한 공중’에서 발원한 ‘의사소통권력’이 공적인 제도로서의 ‘강한 공중’의 결정에 방향성을 제시하고 한계를 설정하는 것, 즉 시민사회의 정치적 요구가 제도권 정치와 행정기관의 결정과 집행에 충실히 반영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짐. 이러한 관점은 미니공중 위주의 토의민주주의 담론을 다각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음.
- (pp.91-92)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이른바 ‘토의민주주의의 체계적 전환(the systemic turn of deliberative democracy)’(Mansbridge et al. 2012)": "앞 절에서 살펴본 논자들의 관점은 고립된 숙의의 계기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토의 역량을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점에서 최근의 ‘체계적 전환’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초점의 미묘한 차이가 사소하지 않은 실천적 함의로 이어지는 지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토의체계’ 주창자들도 토의민주주의의 이상을 미니공중과 같은 특수한 형식을 벗어나 사회 전체로 확장하여 추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토의민주주의의 다양한 실험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비숙의적(non-deliberative)일 수 있는 정치활동과 제도를 분석의 틀로 포함하여 이들간의 관계를 부각시킨다. 예컨대 정부기관, 정당, 전문가 집단, 언론, 이익집단, 사회운동 등이 그러한데, 이 각각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활동은 비록 숙의의 이상에 완벽히 부합하지 않더라도, 체계 전체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정책결정 및 입법을 위한 정보 및 관점의 제공을 통해 숙의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토의체계 분석은 넓은 의미의 정치과정을 구성하는 다양한 공식, 비공식 기구, 포럼, 실천 등이 숙의의 맥락에서 분업적으로 상호 연계되는 복합적 구조를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본 논문의 문제의식은, 다시 한번 라폰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체계-중심이 아니라 시민-중심”의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Lafont 2017, 94). 즉 체계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결과적으로 얼마나 효과적인 숙의가 일어나는가가 아니라, 시민들이 각자 그리고 집합적으로 어떻게 공론장에서의 토의에 관여, 기여, 참여하는가가 핵심인 것이다. 관련하여 전문가나 이익집단, 시민단체 등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특정 사안에 대해 상당히 풍부한 논의를 진행하고 결과적으로 도출되는 정책의 질을 향상시켰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일반 시민들의 관여나 참여는 미미한 경우를 상정해 볼 수 있다. 토의체계 전체에서 달성되는 숙의의 질을 분석의 초점으로 할 경우 이 상황은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체계의 산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구성원들의 각자의 역량과 기여를 소홀히 하는 기능주의적 관점의 위험성을 갖고 있다. 시민들 스스로가 참여하는 공론장에서의 토의를 다른 기구나 제도 등의 기능적 등가물로 치환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Owen and Smith 2015)."
- (pp.92-93) "다방면으로 진행되는 넓은 사회적 토의의 과정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다 포괄적이고 유연한 방식으로 토의민주주의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유홍림 2014; Chambers 2012; Curato et al. 2017; Young 2000). 단적으로 말하자면 집단적 숙의가 반드시 세미나실에서의 학술적 토론과 같은 질서정연하고 엄숙한 형태로 국한되어서는 곤란하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숙의의 양식과 공간을 한정하게 될 경우 또 다른 배제적인 효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와 공론장에서의 문제제기, 대안모색, 논쟁은 무정형적이기 십상이고, 때로는 급진적인 내용과 양식을 취할 수도 있다. 감정과 수사에 호소하는 것이 숙의과정에 방해가 된다는 일반적인 결론도 성급한 것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문제제기와 의견교환이 시민들의 비판적 사고와 성찰을 촉진시키느냐의 문제이다. 집회나 시위, 직접행동 등도 이러한 측면에서 기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의제로 상정되지 못했던 부정의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구체적인 경험에 기반한 문제제기를 통해 사안에 대한 논점과 시각을 다양화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행동주의적인 참여 또한 설득을 위한 상호 존중, 상호 정당화와 근거제시의 과정에 열려있어야 할 것이다. 이 요건을 갖춘다면 이러한 형태와 방식의 참여 또한 토의민주주의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 "비판자들은 토의민주주의자들이 정치를 대화로 치환할 수 있다고 믿는 정치적 순진함에 빠져 있다고 보기도 하고, 합의나 공공선에 대한 강한 지향이 정치 세계의 다원성과 갈등을 무시하는 위험한 함의를 갖는다는 점을 자주 지적한다. 하지만 많은 토의민주주의자들은 이러한 비판이 상정하는 것처럼 인간의 합리성, 이타성 등에 대해 순진할 정도의 낙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지도 않고, 모든 문제를 모든 순간에 숙의를 통해 결정하자고 주장하면서 선거, 운동, 투쟁, 투표, 타협 등 비숙의적인 정치과정을 무시하지도 않으며, 모든 문제에 대해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묘안이나 심지어 강한 의미의 공공선과 같은 수렴지점이 있다고 전제하지도 않는다. 또 잘 고안되고 적절히 배치된 집합적 숙의의 장은 권력관계와 무원칙적인 타협에 취약한 기존의 정치과정과 제도보다 도덕적 정당성과 결과의 수용성 양 측면에서 우월하며, 비판자들이 우려하는 왜곡과 불평등의 문제 또한 기존의 정치과정보다는 집합적 숙의를 통해 문제제기 되고 해법이 찾아질 가능성이 오히려 크다는 반박을 제시한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토의민주주의자들의 이러한 주장이 결정적으로 반박되었다는 이론적, 경험적 근거는 아직 충분치 않다."(p. 94)
- 토의민주주의의 제도화 관련 함의(pp. 94-5): "위의 주장은 미니공중과 같은 숙의 포럼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그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숙의의 저변 확장과 시민들의 토의 역량 함양에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명제로 집약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지금처럼 첨예한 국가적 사안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미니공중 일변도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일상에서 보다 가깝게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이나 공공 서비스 등에 대한 숙의의 공간을 다층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 이렇게 확장될 경우 숙의의 목표로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이나 합의 도출이라는 최종적인 산물을 반드시 상정할 필요는 없다. 수면 아래에 머물러 있지만 공론화가 필요한 의제의 발굴, 첨예하게 논쟁적인 사안의 실타래를 풀어가기 위한 해법 모색,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다수의견에 도전하는 새로운 관점의 탐구, 채택된 정책이 잘 집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사후적인 점검 등의 목표를 위해 숙의 포럼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 결과물이 한편으로는 자문의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 결정이 될 수도 있으며, 그 중간 단계에서 전문가 집단이나 의회에서 논의하게 될 의제를 설정하고 참고자료를 제시하는 정도의 권고안의 형태를 떨 수도 있다. 한편, 숙의가 반드시 전국민적인 관심사를 대상으로 할 필요도 없다. 예컨대 정당의 후보자 공천 등 제한된 참가자와 목표를 갖고 시도되는 숙의 포럼의 시도 또한 충분히 준비되고 조심스럽게 진행된다면 상당히 유미의한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pp. 95-6) "다음으로 공론화위원회 등 미니공중의 자생력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점은 위원회의 활동과 사회 전반의 토의를 보다 적극적, 다층적으로 결합하는 방안을 모색해 제도화하는 것이다. 신고리 위원회와 대입개편 위원회의 경우 [...] 더 아쉬운 것은 위원회 외부, 특히 언론과 대학 및 시민단체의 역할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만약 향후 유사한 형태의 공론화위원회가 시도된다면 이 부분에 대한 보다 면밀한 준비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이 언론의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보도, 대학이나 시민단체에서 개최되는 토론회와 간담회 등과 적극적으로 결합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또 자료의 축적과 활용 및 토의문화의 정착과 발전을 위해서는 학계 및 연구기관과의 장기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다각도의 노력은 공론화위원회 활동의 투명성과 공개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지만, 더 중요하게는 미니공중과 사회적 토론의 시너지를 일으키기 위해 필수적이다."
찾아볼 참고문헌
2017년 여름 Daedalus 특집호
김주성. 2011. “심의민주주의인가, 참여민주주의인가.” 서병훈 외. 『왜 대의민주주의인가』, 이학사.
유홍림. 2014.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의 조건: ‘토의정치’의 제도화.” 조흥식 외, 『한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전략과 정책 대안』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1-53.
이관후. 2018a. "Deliberative Democracy의 한국적 수용과 시민의회: 숙의, 심의, 토의라는 번역을 중심으로.” 『현대정치연구』11권 1호: 189-219.
이관후. 2018b. “'시민의회’의 대표성: 유권자 개념의 변화와 유사성 문제를 중심으로.” 『한국정치학회보』 52권 2호: 31-51.
이영재. 2004. “토의 민주주의의 쟁점과 과제.” 『정치비평』13집: 10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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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진. 2012. 『심의민주주의: 공적 이성과 공동선』. 서울: 박영사.
Chambers, Simone. 2009. “Rhetoric and the Public Sphere: Has Deliberative Democracy Abandoned Mass Democracy? ” Political Theory 37 (3): 323-50.
Dryzek, John S. 2009. “Democratization as Deliberative Capacity Building.”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42 (11): 1379-1402.
Elstub, Stephen. 2010. “The Third Generation of Deliberative Democracy.” Political Studies Review 8: 291-307.
2. 임동균·나윤영(2021). 숙의민주주의의 한계와 가능성 그리고 방법론적 개선 방향. 사회과학연구, 32(2), 221-244.
1. 서론
- (p. 222) "90년대 말부터 서구 정치이론에서는 숙의민주주의가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로 부각 되었고, 관련 논의에 하버마스, 롤스와 센과 같은 정치철학 대가들의 논의까지 그 바탕을 이루면서 숙의민주주의는 학계에 끊임없는 지적 도전을 주는 연구주제가 되었다. 그러한 논의 속에 항상 부각 되는 핵심 주제는 결국 숙의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 간의 간극이라 할 수 있다. [...]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 것인가? 숙의민주주의의 이상을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 우리는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기존의 방대한 문헌을 검토한 결과를 바탕으로 숙의민주주의가 자신에 제기되는 핵심적인 비판들을 극복할 수 있는 실질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시에 숙의민주주의가 더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여러 중요한 과제들이 해결되어야 함을 동시에 강조하고 그것들을 정리하여 제시한다."
2. 숙의민주주의의 이론과 현실: 비판적 의문들과 긍정적 가능성
- (p. 222) "그동안 숙의민주주의와 현실적 사례들에 대한 연구들은 사회과학 분야에서 상당히 많이 축적되어 왔다. 그러한 연구들은 숙의민주주의가 다양한 잠재적 가능성과 힘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Curato et al 2017)." 숙의민주적 방법에 대한 주요 비판을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봄.
1) 대중은 숙의민주주의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시민들이 숙의민주적 방법에 참여하여 정책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 일반 시민의 숙의 참여에 대한 리처드 포스너(Richard Posner)와 일리야 소민(Ilya Somin) 등의 비판(Posner, 2002, 2003, 2004; Somin, 1998, 2004): "그들은 대중이 정치적 사실 및 이슈들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에 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일반인들은 서로 경쟁하는 정책 프로그램 간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어떤 매우 가시적인 정책 결과가 주어졌을 때에도 그것에 대해 누구에게 책임을 묻거나 누구를 비판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고 주장한다. 소민(Somin, 1998)은 숙의민주주의가 매우 큰 지적 부담을 준다고 주장하며, 숙의민주주의자들이 유권자들의 낮은 정치적 지식 수준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포스너 또한 유사한 관점을 가지고 숙의민주주의의 기본 전제조건들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 탈리스(Talisse, 2004)는 이를 ‘대중 무지 반대(Public Ignorance Objection)’라는 표현으로 묘사한다.
- 탈리스(Talisse, 2004)의 반박: (1) 만약 대중의 무지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면, "대중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주고 그에 대해 이성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 즉 숙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대중들은 얼마든지 올바른 정치적 의견을 가질 수 있게 된다." (2) 만약 대중이 복잡한 사안에 대한 지식을 흡수하여 소화할 수 있는 ‘인지적 능력’이 부족한 것이라면, 이는 애커먼과 피시킨(Ackerman & Fishkin, 2004)이 지적하듯이 올바른 판단을 촉진하는 공적 시스템이 부재하여 선정적인 뉴스 미디어 등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비롯하며, 좋은 숙의 환경이 조성된 경우 대중은 좋은 판단 능력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러한 방향으로 기존의 시민사회 제도들을(civic institutions) 지속적으로 수정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Talisse, 2004, 459쪽)."(p. 224) (3) 대중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무지하다는 주장은 현실에 맞지 않으며, 또한 정치적 관심은 숙의민주주의적 실천을 통해 촉발될 수 있다.
- (p. 225) 숙의 토론 참여를 통해 시민들의 정치적 역량이 향상된다는 경험적 증거들: "안데르센과 한센(Andersen & Hansen, 2007)의 덴마크에서의 유로화 사용문제와 관련된 공론조사 사례는 공론조사 과정을 통해 시민들의 정치적 지식과 이성적 추론에 근거한 의견 형성 능력이 상승함과 동시에 참여자들의 상호 이해도 증진됨을 보여준다. 이와 더불어 남인도의 그람 사바스(gram sabhas)에 관한 라오와 산얄(Rao & Sanyal, 2010)의 사례 연구는 숙의가 사회적으로 소외된 집단의 역량 또한 향상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피시킨과 러스킨(Fishkin & Luskin, 2005)의 공론조사 사례도 숙의민주주의에 대해 흔히 이루어지는 많은 비판적 우려들이 사실상 모두 현실적으로는 나타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이외의 긍정적인 공론조사 사례 결과들 또한, 시민들의 무지를 근거로 숙의민주적 방법을 부정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근거를 제공해준다(Eggins, Reynolds, Oakes, & Mavor, 2007; Schweigert, 2010). 사실 대중들의 ‘무지’나 편향성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에도 결정적인 결함이 된다. 숙의민주주의는 오히려 기존의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 # 시민들의 지식, 인지능력, 관심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숙의를 반대할 근거가 아니라 숙의의 필요성에 대한 근거. 특히 교육에서.
2) 대중의 의견은 [합리적인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 "시민들이 숙의토론으로 자신의 의견을 바꾸는지"
- (p. 225) "의견 변화는 보통 숙의 과정으로부터 나타나는 기초적 결과 중 하나로 이야기되어 왔다. 특히 챔버스(Chambers, 2003)는 마음의 변화, 의견의 변화가 숙의민주주의 이론의 중심 원리라고 주장하면서 숙의의 의견 변화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제가 실제 숙의에서 충족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됨. 매키(Mackie, 2005)는 태도를 여러 믿음들이 상호 의존하는 연결망 구조로 이해하고, 따라서 의견 변화를 위해서는 상호 연결된 여러 믿음들에 동시에 도전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숙의를 통한 설득의 가능성을 비판함.
- (p. 226) 숙의가 왜곡된 의견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비판: 숙의가 기존의 입장을 강화하는 집단 극화 현상(Sunstein, 2002) 및 "숙의 과정이 사전 태도를 강화하고(Wojcieszak, 2011; Zhang, 2019), 동기화된 사고(motivated reasoning), 즉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을 야기함으로써(Mercier & Landemore, 2012) 왜곡된 의견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숙의에서의 경험 강도를 고려할 때 의견 변화의 정도가 크지 않다는 비판(Gilens, 2011)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다음으로, 숙의가 불평등으로 인한 차별과 배제의 문제를 여전히 야기함에 따라 진정한 의미의 의견 변화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입장도 제기된다(Karpowitz, Mendelberg, & Shaker, 2012; Sanders, 1997; Young, 1996)."
- (p. 226) 이러한 의문들을 반박하는 여러 경험 사례들이 논의됨(Myers & Mendelberg, 2013): "먼저 맥키의 주장과 관련하여, 숙의 과정의 초일상성이 숙의의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태도 연결망에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밝히는 연구가 보고되고 있다(Ganuza, Francés, Lafuente, & Garrido, 2012). 다음으로 왜곡된 의견 변화 현상의 경우, 제도적 장치 마련과 다양한 이견 노출이 가능한 토의 환경 조성이 집단 극화, 사전 태도 강화, 동기화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제시되고 있다(Esterling, Fung, & Lee, 2015, 2019; Grönlund, Herne, & Setälä, 2015; Strandberg, Himmelroos, & Grönlund, 2017). 나아가 불평등이 야기하는 차별과 배제의 문제도 의사소통 방식 및 의사결정 규칙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극복될 수 있음이 여러 연구들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Karpowitz et al., 2012; Polletta & Gardner, 2018). 이외에도 숙의 토의 과정에서의 설득이 의견 변화를 추동할 수 있음을 밝히는 연구(Westwood, 2015), 숙의가 의견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의견 제약의 측면에서도 변화를 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Gastil & Dillard, 1999), 그리고 의견 변화가 양극화된 선호 구조가 아닌 단봉선호(single-peaked preference)의 양상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Farrar, Fishkin, Green, List, Luskin, & Paluck, 2010)들이 제시되고 있다. 한국 사례의 경우에도 공론화 과정에서 의견 변화가 유의미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경험적으로 탐구하는 연구들이 서서히 제시되고 있다(김혜경, 2019; 나윤영, 2020; 정형안, 이윤석, 2020). 이처럼 많은 경험 연구들이 의견 변화의 가능성을 여러 경험 사례들을 중심으로 증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의 의견은 변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숙의민주주의의 기술적․방법론적 측면의 개선 문제로 치환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라이프(Ryfe, 2005)는 기존 사례들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숙의를 위한 다섯가지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마이어와 멘덜버그(Myer & Mendelberg, 2013): 숙의에 의한 의견 변화 여부에 크게 집착할 필요 없음. 숙의민주적 방법은 의견 변화 외에도 깊은 학습과 비판적 검토의 과정으로서 가치가 있음.
- (p. 227) "여러 연구들은 숙의적 실천이 심각하게 분열된 사회에서도 좋은 효과를 만들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Curato et al., 2017). 특히 러스킨 외(Luskin et al., 2014)는 북아일랜드에서의 공론조사 사례를 바탕으로 심각하게 분열된 사회에서도 숙의가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숙의를 통해 대중의 의견이 변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 숙의가 올바른 조건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느냐와 관련된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숙의민주주의의 근본적 타당성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바람직한 숙의를 향한 올바른 조건의 탐색이다."(p. 227) "올바른 조건 아래에서 숙의민주적 방법이 활용될 때 숙의에 의한 유의미한 의견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p. 232)
3) 숙의에 의한 의사결정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숙의에 의한 의사결정으로 정치적 책임 회피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지"
- 숙의 결과에 대한 책임성(accountability)과 관련된 두 가지 문제: (1) 책임성의 불분명함, 그리고 (2) 책임 전가의 문제. "사실 책임성과 책임 전가 문제는 지난 여러 공론화 과정에서 제기된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다. 이상명(2019)은 국민이 선출 및 권한 위임하지 않은 시민참여단에게 공론화 과정의 책임을 물을 수 없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공론화 과정이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음을 강조하였다."(p. 227)
- "책임성의 불분명함은 민주적 정당성, 정치적 대표성의 문제와 연관되어 나타난다. 라폰트(Lafont, 2017)는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으로 숙의민주적 방법을 도입하는 것은 정치적 시스템의 민주적 정당성을 감소시킨다고 주장한다. 무작위로 선정된, 기술적(descriptive) 의미의 대표라고 할지라도 숙의 대표는 결코 모든 시민들을 대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숙의 대표는 시민들에게 정책적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p. 227)
- "정부가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전략적으로 숙의 대표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문제적 가능성이 있다. 드라이젝(Dryzek, 2015)은 숙의민주적 방법이 실패하는 시스템적 원인 중 하나로 책임 전가를 제시하는데, 그에 따르면 정부가 미리 결정된 정책 입장을 지지받기 위해, 시간을 벌기 위해, 또는 상징적인 수단으로 숙의민주적 방법을 활용하는 경우 숙의민주주의는 실패할 수 있다. 세탈라(Setälä, 2017) 또한 숙의민주적 방법이 정책 입안자들의 입장을 강화하거나 그들이 추구하는 정책을 정당화하고 실현하기 위한 형식적인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고, 시민사회의 비판적 목소리를 침묵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경우 숙의의 결과는 여전히 논쟁적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게 된다. [...] 유권자와 선출된 대표 사이의 정치적 대표성이 아닌 다른 형태의 선출되지 않은 비공식적 대표성, 즉 기술적 대표성이 숙의민주주의에서 나타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책임성의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Urbinati & Warren, 2008)."(pp. 227-8)
- 우리는 이러한 책임성의 문제도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 숙의민주적 방법을 제도화하느냐에 따라 상당부분 해결 가능
한 문제인 것으로 판단한다. 세탈라(Setälä, 2017)는 숙의민주적 방법의 반복적이고도 지속적인 활용이 책임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중이 숙의민주적 방법을 공공 의사결정 과정에서 특수한 역할을 하는 제도로 인지하도록 함으로써, 특정한 유형의 이슈들에 대하여 활용 가능하도록 제도화함으로써, 다양한 정치적 행위자에 의해서도 숙의민주적 방법이 사용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리고 다양한 정치적 행위자들이 숙의민주적 방법에 함께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외에도 브라운(Brown, 2018)은 공론조사와 같은 숙의민주적 방법이 대의민주주의 제도와 연결되면 정치 시스템의 민주적 정당성이 개선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맥켄지(MacKenzie, 2018) 또한 상대적으로 견고한 숙의 환경의 형성이 민주적 정당성의 제고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숙의민주적 방법의 제도화는 정책 결정에 있어서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고, 정치적으로 대표되는 이들이 더 바람직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봉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숙의민주주의의 활용은 책임성의 문제로부터 벗어날 뿐 아니라 오히려 책임성 문제를 개선시킬 수 있는 결과를 낳는다.
3. 숙의민주 방법론의 현실적 개선 가능성: 공론조사의 사례
1) 참여자와 참여방식에 있어서의 다양성
- "숙의 토론이라고 하여 지나치게 이성적인 토론과 발언, 증거에 기반한 형식적 합리성만을 기준으로 숙의가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숙의에 반대한다(Against Deliberation)’는 논문에서 샌더스(Lynn Sanders)는 사회의 많은 소수자들이 엘리트들의 합리주의적 담론 형식과 다른 발화 문화(speech culture)를 지니는 경우가 많음을 경고하였다(Sanders, 1997).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영(Iris Young)은 ‘소통적 민주주의(communicative democracy)’ 개념을 통해 소통에 인사, 수사, 유머, 증언,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양식의 소통 방식들을 조건적으로 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Curato et al., 2017). 이와 같이 소통 형식의 다양성을 열어놓는 것은, 자신의 입장을 어떤 표준화된 형태의 합리주의적이고 이성적이고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형식으로 전달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실질적 욕구를 표출할 수 있게 해주는 통로를 열어놓는 것이다."(pp. 230-1)
2) 감정의 역할에 대한 적극적인 고려 (Morrell, 2010; Grönlund, Herne, & Setälä, 2017; Neblo, 2010; Kim, 2016)
3) 숙의토론 조정 기법 개선
- 조정자(facilitator)·모더레이터의 기능은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다.
- "그란룬드 외(Grönlund et al., 2015)의 연구에 따르면, 토론 과정에서 의견 양극화는 주로 비구조화된 대화(unstructured conversation)에서 나타난다. 반면 숙의 원칙을 지키게끔 하도록 진행하는 토론에서는 양극화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이 행한 실험은 핀란드에 이민자를 얼마만큼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숙의였다. 실험 결과, [숙의 원칙을 지키게끔 조정자가 역할을 하는 숙의에서는] 이민자들에 대해 극도로 적대적이었던 사람들이 숙의 토론 후 더 관용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구조화되지 않은 대화를 한 집단에서는 사람들이 더욱 극화된 태도를 가지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숙의 토론에서 조정자의 역할과 그들이 따를 수 있는 숙의 원칙들을 잘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그간 모더레이터의 역할에 대한 학술적 지식이 충분히 축적되지 못했던 한국에서 공론조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앞으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사안이라 할 수 있다. / 험프리스, 마스터스와 샌부(Humphreys, Masters, & Sandbu, 2006)의 경우 공론조사에서 토론 분임조에 토론 리더들을 무작위로 배정하여 살펴본 결과 리더의 효과가 매우 컸음을 보여주고 있고, 시우(Siu, 2017)는 토론 과정에 있어서의 불평등 문제를 토론 과정에서 적절한 조정을 통해 관리해야 할 필요를 보여주고 있다. "(p. 233)
4) 상향·하향식 접근에 있어서의 유연성
5) 공론조사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탈피
-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이후로, 그것을 모델로 한 공론조사들이 한국의 중요한 정책적 의사결정을 위한 수단으로 기계적으로 답습되면서 사람들이 공론조사에 대한 피로감을 가지게 되었다.2) 이는 오히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냉소를 불러일으키게 한 측면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냉소는 특히 지난 공론조사들이 지나치게 합의와 다수결 중심적 목표를 가지고 진행된 결과, 공론조사라는 형식적 틀에 얽매였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다른 한편으로는 공론조사가 책임 떠넘기기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아니냐는 지적도 수차례 제기되어 왔다. / 이러한 문제를 없애려면 우선 공론조사가 아닌 다른 형태의 숙의민주주의 도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숙의민주주의의 다양한 방법들이 활용되고, 실험되도록 해야 한다. 숙의민주주의에 다양한 방법론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로, 시나리오 워크숍, 시민자문회의, 합의회의, 시민의회, 타운홀미팅, 시민배심제, 시민포럼 등 다양한 방법들이 우리 사회에서 실험해 볼 수 있는 선택지로 존재한다(박기태, 이명진, 2020). 이와 같이 다양한 숙의민주주의의 방법들을 어떠 방식으로 제도화하여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기존의 공론조사 기법을 활용함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시민사회에서 숙의가 더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민단체, 기업조직, 각종 이익단체들 간 숙의 포럼이 열릴 수 있도록 하고, 의회 체제 및 정부조직 내에서도 공식․비공식 숙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문가 조직이나 책임을 지닌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숙의가 제도적으로 정착되도록, 정부 내외의 공간에 숙의가 열릴 수 있는 구체적 장치와 관례들이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나 의회에 숙의 토론을 관리하고 제도화할 수 있는 상설 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대중들을 포괄하는 보다 폭넓은 수준에서의 숙의 장치를 고안하고자 한다면 브라질의 사례인 국가 공공 정책 회의(National Public Policy Conferences)와 같은 공적 숙의 장치를 고려할 수 있다"(pp. 234-5)
6) 참여의 질에 대한 고려
- "2018년에 실시되었던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에서 공론조사 후 작성된 검증보고서에서는 참여자들이 숙의의 대상으로 주어진 이슈들에 대해 (숙의토론이 끝날 시점에)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지, 기본지식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4가지 의제에 차별화된 선호를 보이는지에 대해 분석한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대입제도개편을 위한 시민참여형 조사 검증위원회, 2018). 보고서에서 제시된 몇 가지 분석결과와 그에 근거한 결론은, 공론조사 과정에 끝까지 참여한 시민참여단이라고 해서 그들 모두가 높은 참여의 질을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참여단의 일부는 숙의토론 기간이 끝날 때까지도 주어진 사안에 대해 기대되는 지식을 지니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그 비중도 무시하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 향후 공론조사에서는 이와 같이 주어진 주제나 정책적 대안들에 대한 참여자의 이해도, 혹은 참여의 적극성 문제를 어떻게 고려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보다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여러 경쟁하는 사안들에 대한 의견들을 물어보는 경우, 적지 않은 참여자들이 긴 숙의 후에도 어떤 차별적 선호도 보이지 않거나, 기본적인 지식을 숙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면 그러한 응답 결과를 분석 시에 얼마나 의미있게 포함시켜 국가적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할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p. 235)
7)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공론조사 과정의 개선
8) 설문조사 방법에 있어서의 개선
4. 결론
- "정치학자 이언 샤피로(Ian Shapiro)는 정치적 숙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가장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들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빼앗는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즉, 세상의 가장 중대한 문제들은 많은 자원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결정될 수 있고, 그것들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은 정당 간의 경쟁이나 의회에서의 갈등인데, 숙의는 그러한 중대 문제들을 어떻게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중요한 공화주의적 문제로부터 관심을 돌리게끔 한다는 것이다(Shapiro, 2017)."(p. 237)
-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중요한 것은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추상적 예찬과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이것을 현실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어 어떻게 하면 그 효과를 더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라 할 수 있다."(p. 237)
-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훨씬 더 다양한 형태의 숙의 실험들이 모색되고 실행되어야 함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숙의 과정조차 형식적 정당성에 집착하거나 단기간에 해치우는 것을 넘어서, 여러 다양한 참여방식, 토론방식, 소통 방식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참여와 토론 진행에 있어서의 질을 높이며, 일반 시민들의 삶과 공식적인 제도들 모두에 자연스럽게 숙의의 문화와 실천이 스며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이 심화될수록 전반부에 제시하였던 숙의민주주의의 잠재적 문제점들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p. 238)
- "챔버스(Chambers, 2003)는 이미 2003년에, 이제 숙의민주주의와 관련해서 이론적 지식(theoretical knowledge)이 아닌 실천 지식(working knowledge)을 축적해야 할 때라고 말한 바 있다. 즉, 공론조사와 관련된 보다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지식들이 축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머츠(Mutz, 2008)의 주장대로, 검증 가능하고, 반박 가능한 가설들을 수립하고 그것들을 지지 혹은 기각하는 형태의 경험 연구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성공적인 숙의민주적 방법론의 개발과 개선을 위해서는 이론적 탐구뿐 아니라 끊임없는 제도적 실험들이 이루어져야 한다."(p. 238)
- "현재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와 침체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의 대안은 대의민주주의의 축소와 더 많은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라, 시민을 대표하는 자들이 충분히 심의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다른 한편, 참여민주주의가 요청된다고 하여 더 많은 참여가 더 나은 민주주의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시민들에게 성숙한 공적 숙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고, 그것을 통해 참여가 유도되도록 하는 것이 참여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더 나은 민주주의로 우리 사회를 이끌 것이다. 즉, 숙의와 참여가 함께 할 때(Curato et al., 2017) 더 나은 민주주의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아직 한국의 숙의민주주의의 역사는 짧지만, 이것이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장기적으로 실험될 때, 한국사회의 정치적, 시민사회적 토양은 조금씩 변화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산적한 정책적 딜레마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 현재 뿌리깊이 박혀있는 정치적 양극화의 구조를 바꾸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p. 238)
찾아볼 참고문헌
박기태·이명진(2020). 공론화 과정에서 나타난 숙의 효과: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를 중심으로. <조사연구>, 21(2), 51-69.
정형안·이윤석(2020). 숙의민주주의의 실현?: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 관련 쟁점들에 대한 경험적 접근. <조사연구>, 21(2), 25-49.
3. 임동균(2018). 동아시아의 새로운 민주주의: 숙의 민주주의의 현황과 미래. Diverse Asia, 1(2), 1-9.
동아시아의 새로운 민주주의: 숙의 민주주의의 현황과 미래 | DiverseAsia (snu.ac.kr)
- "숙의 민주주의(또는 심의 민주주의; deliberative democracy)는 투표나 여론 조사를 통해 일반 시민들의 선호를 간단히 조사하여 그것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선호집합 민주주의’ 아이디어를 반대하고, 자유롭고 평등하며 열린 토론을 바탕으로 참여의 질을 높여 공공문제 해결을 하는 민주주의의 이상이자 현실적 방법론이다."
- "숙의 민주주의에서의 숙의 과정은 어떠한 쟁점에 대해 찬반 논쟁을 해서 한 쪽이 승리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숙의의 핵심은 바로 사려깊은 저울질(weighing)이다. [...] 그러한 숙의의 과정은 타인과의 토의를 통해서 진행되기도 하지만, 내적 성찰, 그리고 내적 숙의(“deliberation within”)이라 할 수 있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 또한 핵심적 요소로서 포함한다. 즉 서로 다른 논거와 가치들을 타인과의 토론을 통해 대립시키거나 한 개인이 자신의 내부에서 각각을 서로 대면시킨 후 그러한 대립적 관점들을 사려깊게 비교하여 설득력의 우위를 판단하는 것이다."
- "이러한 숙의 민주주의는 대중여론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 대중여론 민주주의에서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개인들의 고정된 선호 가정은 그러한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 문제점으로 비판받아왔다. 개인이 충분한 정보를 습득하지 못하고, 타인과의 충분한 의사소통이나 의견 교환, 토론의 기회를 가지지 못하며, 해당 문제에 대해 충분히 숙고할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놓는 의견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여론’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여론이라 할 수 없다. [...] 따라서 숙의 민주주의에서는 개인의 선호라고 하는 것은 토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보며, 민주주의의 의미는 그러한 지속적인 과정에 있는 것으로, 그리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갈등을 협력과 성찰과 동의로 전환시키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본다."
- "숙의 민주주의를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운용하고 현실화시키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법론은 공론조사, 시민배심원, 시나리오 워크숍, 합의회의 등인데, 이러한 숙의를 위한 틀을 갖추어지면 비교적 적은 숫자의 시민집단이 구성되어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작은 집단을 미니공중(mini-public)으로 일컫기도 하는데, 숙의 토론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전체 시민들을 대표할 수 있는 작은 공중(公衆)이 되게끔 구성한 것이다. 미니공중은 사회의 주도권 세력들에 의해 배제된 사회적 약자들의 선호와 이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참여 구성원들이 대표성을 가지는데 중점을 둔다. [...] 미니공중에 포함된 개인들은 단순히 자신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 그들은 의사소통을 통해 하버마스(Jürgen Habermas)가 말한 이성의 공적 활용(public use of reason)을 통해 자신의 이득만이 아닌 사회 전체를 위한 공공성과 사회적 약자를 고려하는 이성을 발휘시키기를 기대 받는다(Habermas, 1995). 이러한 소규모 숙의에서는 하버마스가 말한, 최선의 논증이 가지는 힘(“forceless force of the better argument”)이 참여하는 개인들의 그 어떤 사회적 위치보다도 더 강력한 권위와 힘을 가지게 된다."
-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숙의 민주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게 된 계기는 2017년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건설 중단·재개 여부와 관련된 공론 조사였다. [...] 학계나 시민단체 등에서의 여러 비판적 평가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성공적 시도였던 것으로 인식되었고, 특히 이후 원전 건설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사그러들게 됨에 따라 공론조사의 효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 "신고리 공론화가 이렇게 성공적 평가를 받게 되자, 기타 이슈들도 숙의를 통한 의견 수렴을 시도하는 사례들이 생겨났다. 신고리 공론화 이듬해 초, 문재인 대통령은 역시 자신의 공약사항인 개헌을 공론화 하기로 하였고, 이어 대통령 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 산하에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설치되어 이 위원회를 중심으로 약 한 달여간 권역별 숙의토론회, 2천명 대상 여론조사, 주요 기관과의 간담회, 그리고 온라인 웹사이트를 통한 의견수렴 등이 진행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위원회 위원 30명은 최종적으로 대통령에게 헌법 개정 자문안을 제출하였다. 이 과정 역시 다시 한 번 중요한 국가적 사안에 대해 숙의적 절차를 진행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으나, 개헌이라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전체적 숙의 과정이 두 달도 채 안되는 기간 동안 지나치게 급하게 해치워졌다는 점, 전체적인 국민과의 소통이 거의 부재했고 정보 또한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는 점 등이 비판을 받았다.
- "이어 2018년 4월에는 교육부가 역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에 ‘대학입시제도 국가교육회의 이송안’을 보내면서, 국가교육회의가 2022년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추진을 시작, 공론화 위원회를 구성‧운영하게 되었다. 이 경우 전자들에 비해 가지는 특징 중 하나는, 공론조사 방식이 아닌 시나리오 선택형 조사가 실시되었다는 점이다. 즉, 가능한 대입제도 개편 방안에 대해 4가지 시나리오를 수시‧정시 비율, 수능 절대평가 전환 등을 조합해 마련한 것이다. 숙의에 참여한 최종 약 500명의 시민참여단이 각 시나리오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 "이와 같은 숙의 민주주의적 어프로치는 전국 단위의 굵직한 사안들에 대해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울, 대구, 울산, 제주 등 각 지자체들에서도 지역 개발이나 민생 현안과 관련된 이슈들을 시민참여형 숙의 토론을 통해 해결하려는 움직임들이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