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논어』 노트들

neon_eidos 2023. 11. 10. 11:00

예전에 논어 읽고 썼던 노트들. 주요 인용문들 주섬주섬 모아놓은 것(아마 김형찬 번역 기반으로, 김영민 책 참고해서). 은근 자꾸 다시 찾아보게 돼서 접근성을 위해 블로그에 올림.

 

(a) 2021.5. 노트

1. 예의 근본은 인

예의 근본은 외적 형식보다 진실한 마음이다.

  • “예가 어떻다, 예가 어떻다 말들 하지만, 그것이 옥과 비단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음악이 어떻다, 음악이 어떻다 말들 하지만, 그것이 종이나 북을 말하는 것이겠는가?”(17-11)
  • “사람이 되어서 인하지 못하다면 예를 지킨들 무엇하겠는가? 사람이 되어서 인하지 못하다면 음악을 한들 무엇하겠는가?”(3-3)

 

중요한 것은 주어진 규정들을 그대로 답습하여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 “(윗자리에 있으면서 관용을 모르고,) 예를 행하면서 경건하지 못하고, 상례에 임하면서 슬퍼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더 이상 볼 것이 없다.”(3-26)

 

이를테면 부모를 물질적으로 잘 봉양하는 것이 효의 전부가 아니다.

  • "공경하지 않는다면 짐승을 먹이는 것과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2-7)

 

인의 본질이 진실된 마음이기 때문에, 인은 가식과 정반대이다.

  •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꾸미면서 인한 이는 드물다."(1-3, 17-17; cf. 5-25, 6-14)
  • 오히려 “강직함과 의연함과 질박함과 어눌함이 인에 가깝다.”(13-27)
  • “옛날에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수양을 위해서 했는데[爲己],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한다[爲人].”(14-25)

 

그러나 한편으로, 진실한 마음은 결국 적절한 형식인 예로 표현되어야 한다. 공자는 ‘바탕 즉 진실한 마음과 ‘겉모습 즉 외적 형식을 모두 중시한다.

  • "바탕이 겉모습을 넘어서면 촌스럽고, 겉모습이 바탕을 넘어서면 형식적이다. 겉모습과 바탕이 잘 어울린[文質彬彬] 후에야 군자답다."(6-16) 

 

궁극적으로 예와 인은 서로를 함축한다. 즉 진정한 인과 진정한 예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불가분의 관계다. 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공자의 대답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 “자신을 이겨내고 예로 돌아가는 것(克己復禮)이 인이다. ...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12-1)

 

어떻게 하는 것이 인인가? 한편으로 공자는 부모님, 어른, 친구 등에게 잘하는 것, 인륜에 충실할 것을 말한다.

  • “효도와 공경이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1-2)
  • 공자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뜻을 한마디로 “노인들은 편안하게 해주고, 벗들은 신의를 갖도록 하고, 젊은이들은 감싸 보살펴주고자 한다.”(5-25)라고 표현했다. 

 

또 한편으로, 인의 핵심 내용 중에는 황금률이 있다.

  • “평생토록 실천할 만한 한 마디”가 있다면 바로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서(恕)”다(15-23).
  • "인이란 자신이 서고자 할 때 남부터 서게 하고, 자신이 뜻을 이루고 싶을 때 남부터 뜻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가까이 있는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서 남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인의 실천 방법이다."(6-28)

 

이외에도 인은 여러 덕목을 요구한다. 인이 무엇인지 묻는 이들에게 공자는 다음과 같이 가지각색으로 대답한다.

  • “말을 조심하라”(12-3)
  • "공손함·너그러움·미더움·민첩함·은혜로움 다섯 가지를 실천할 수 있으면 인이다(17-6)
  • "집 문을 나가서는 큰 손님을 대하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드는 듯이 하는 것"(12-2)
  • “사람을 사랑하는 것”(12-22)

 

그래서 해석자들은 인을 모든 덕목을 포괄하는 완전한 덕’(全德)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인은 고정된 원칙을 주어진 대로 따르는 게 아니다.

  • “군자는 천하에서,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없고, 절대로 안 된다는 것도 없으며, 오직 의로움만을 따를 뿐이다”(4-10)

 

공자는 옛날의 예가 시대에 따라 변한 사례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유연하게 판단한다. 인이 표현된 것이 곧 예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표현 방식은 시대마다 조금씩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 관을 삼베가 아닌 실로 짜서 만드는 것은 “검소하므로” 수용하고, 마루 아래에서 절하는 대신 마루 위에서 절하는 것은 “교만하므로” 따르지 않는다(9-3).

 

그러므로 인한 사람이 되려면, 기존의 규범들을 배울 뿐만 아니라, 스스로 무엇이 인인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망령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2-15)

 

공자는 궁궐에 들어서서는 몸을 움츠리고 낯빛을 바로잡고 숨소리를 죽였고, 빠른 걸음으로 나아갈 때도 새가 날개를 편 듯 단아하였으며(10-4), 상을 당한 사람 옆에서는 배부르게 먹지 않고, 곡을 한 날에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7-9)... 등등의 일상 전반의 세세한 행동 하나하나에서 예를 실천했지만, 그런 온갖 행위 규범을 어디선가 배운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 체득한 원리를 자연스럽게 응용한 것이다. 행동 규범의 궁극 원천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는 것이다. 

  • "사야, 너는 내가 많은 것을 배워서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15-2)
  • 그 최고 경지에서는, “일흔 살에는 마음 가는 대로 따라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2-4)

 

2. 인을 추구하는 태도

  • "군자는 먹는 것에 대해 배부름을 추구하지 않고, 거처하는 데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다.”(1-14)

 

애써 초연하려 해서가 아니라, 훨씬 더 중요하게 추구하고 즐거워하는 바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 “가난하면서도 즐겁게 살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한다”(1-15).
  • “어질도다, 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가지고 누추한 거리에 살고 있으니,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런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겠지만, 회는 그 즐거움이 변치 않는구나. 어질도다, 회여!”(6-9)

 

공자에게 인은 억지로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편안하고’ ‘기쁘고’ ‘좋아하고’ ‘즐겁게여긴 바다.

  • “인한 사람은 인을 편안히 여긴다.”(4-2)
  •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1-1)
  • “분발하면 먹는 것도 잊고[發憤忘食], 도를 즐기느라 근심을 잊어, 늙음이 곧 다가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7-18)
  • "열 집쯤 되는 조그만 마을에도 반드시 진실됨과 미더움이 나만한 사람은 있겠지만, 나처럼 배우기를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다."(5-27)

 

인은 목숨보다 간절한 가치였다.

  • “살기 위해 인을 해치지 않으며, 자신의 목숨을 바쳐 인을 이룬다[殺身成仁].”(15-8)
  • “아침에 도를 들어 알게 된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4-8)

 

공자는 생전에 자신의 뜻을 실현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 누군가는 그를 “안 되는 일인 줄 알면서도 그 일을 하는 사람”(14-41)이라고 했다.
  • 공자도 “도가 실현되지 않을 줄은 이미 알고 있었다."(18-7)
  • 하지만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라.”(1-1, 1-16, 4-14, 14-32, 15-18)고 강조하며 열렬히 자신의 도를 추구했다.

 

인을 위한 공부는 지식을 얻을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동과 마음까지 철저히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 공자는 "학문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단속할 것"(6-25, 9-10, 12-15) 즉 글공부와 덕행을 모두 가르쳤지만,
  • “젊은이들은 집에 들어가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가서는 어른들을 공경하며, 말과 행동을 삼가고 신의를 지키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사람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 이렇게 행하고서 남은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글을 배우는 것이다.”(1-6)에서 볼 수 있듯이 덕행이 본질이다.

 

인을 끊임없이 부지런히 실천해야 한다.  공자는 의지를 내서 실천하라는 권면을 많이 한다.

  • "군자가 인을 버리고 어찌 군자로서의 명성을 이루겠는가? 군자는 밥 한 끼 먹는 사이에도 인을 어기지 말아야 하고, 아무리 급한 때라도 반드시 인에 근거해야 하고, 위태로운 순간일지라도 반드시 인에 근거해야 한다."(4-5)
  • "하루라도 인을 위해 자신의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역량이 부족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4-6)
  • 염구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제 능력이 부족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능력이 부족한 자는 도중에 가서 그만두게 되는 것인데, 지금 너는 미리 선을 긋고 물러나 있구나.”(6-10)
  • "인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을 실천하고자 하면, 곧 인은 다가온다."(7-29, cf. 9-30)

 


(b) 2022.2. 다시 노트

기존의 예 규범들이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공자는 제자가 삼년상을 일년으로 줄이려 하고, 대부가 천자의 예법을 사용하는 것을 보며 개탄했다. 이 상황에서 “옛것을 좋아한다”, “주나라를 추종한다”고 했던 그의 일견 복고적인 주장들이 먹혀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표면적인 행위 양식보다 더 근본적인 무언가를 말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되어서 인하지 못하다면 예를 지킨들 무엇하겠는가?”(3-3)

  “[삼년상을 일년으로 줄이자는 제자 재아에게] 네가 편안하다면 그렇게 하여라! 군자가 상을 치를 때는 맛있는 것을 먹어도 맛이 없고,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집에 있어도 편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 재아는 인하지 못하구나!"(17-21)

 

인으로 대변되는 어떤 내면의 상태가 본질적이고, 거기에서 특정한 행위 규범들이 생겨나고 의미를 갖게 된다. 도덕이 단지 사회의 규범에 순응하는 것이라면 도덕은 맹목적이고 무의미한 것이 되지만,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를 자기 안에서 찾아낸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진심으로 편안하고 즐겁다. 

 

  “일흔 살에는 마음 가는 대로 따라도 어긋남이 없었다.”(2-4)

  “분발하여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워서 근심을 잊었다.”(7-18)

 

오직 이것을 진심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안락과 부, 타인의 인정, 그리고 목숨에도 무심하다.

 

  “어질도다, 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가지고 누추한 거리에 살고 있으니,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런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겠지만, 회는 그 즐거움이 변치 않는구나. 어질도다, 회여!”(6-9)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라.”(1-16, 4-14, 14-32, 15-18)

  “뜻 있는 선비와 인한 사람은 살기 위해 인을 해치지 않으며,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인을 이룬다.”(15-8)

 

공자는 인이란 무엇이라고 최종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제자마다 가지각색으로 가르치고, 삶으로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공자의 도를 관통하는 핵심이 “충과 서”였다는(4-15) 대목에 기초하여 인을 실현하는 기본적인 큰 방향을 정리해볼 수 있다. 충은 진실된 마음이고, 서는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우선 서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15-23) 또는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서게 하는 것”(6-28)이다. 이처럼 공자는 기본적으로 타인을 향하는 마음을 일깨워줄 때가 많다. 

 

  “자기 수양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14-45)

  “노인을 편안하게 하고, 친구에게 믿음직하고, 젊은이들을 품어주고자 한다”(5-25) 

 

인의 또 다른 핵심은 진실된 마음이다. 그래서 인은 가식과 대조된다.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꾸미면서 인한 이는 드물다.”(1-3) 오히려 “강직함과 의연함과 질박함과 어눌함이 인에 가깝다.”(13-27) 또한 특정한 외적 결과보다는 내면의 진심이 근본이기 때문에, 인은 무엇보다 자기 의지에 달려 있다. 

 

  “인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하고자 하면 인에 닿는다.”(7-29) 

  “하루라도 인에 힘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힘이 부족한 자는 보지 못했다.”(4-6) 

  “[자기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제자 염구에게] 능력이 부족한 이는 도중에 그만두는데, 너는 선을 그어놓고 있다.”(6-10) 

 

인은 한편으로는 누구나 의지만 있으면 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주어진 규범을 준수하는 것을 넘어선 자율적 도덕의 경지, 남들과는 전혀 다른 것을 진심으로 추구하는 인간의 경지이기에 아득히 멀어서 애타고 궁금해할 수 있을 뿐이다. 공자의 제자들에게도 어려웠고, 유교적 이상에 헌신하기로 결의한 선비들에게도 어려웠는데, 오늘날 그런 이상을 공유하는 공동체 없이 학교 지식의 한 조각으로 공자를 배우는 우리에게 공자는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윤리교육으로 공자의 인을 실제로 체화시키라는 요구는 조급하고 비현실적이다. 공자를 통해 내가 추구하고 편안해하는 것을 상대화할 수 있게 되어 이것이 유일한 인간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무언가에 진심을 다하고 타인을 위하고자 하는 내 안의 잠재적 욕구가 희미하게 공명할 수 있다는 것?

 

『논어』(김형찬 옮김, 현암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