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및 시험

논자시 준비: 서양윤리(1) 수치심

neon_eidos 2023. 2. 20. 14:25

1. 수치심(shame)이란
- 자신이 수용하는 어떤 기준에 미달했다는 판단에 따르는 부정적 감정(Flanagan, 2021: 134-137; Kekes, 1988: 282)

2. 수치심의 가치: Flanagan(2021), Mason(2010) 등의 수치심 옹호
- 수치심은 어떤 가치나 이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것에도 부끄러울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을 도덕적 평가로부터 열외로 취급하는 것, 즉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든 개의치 않는 것이다 -- "도덕적 회피"(Mason, 2010: 417).
- 수치심이 단지 타인의 평가에 기초하는 타율적인 것이며, 따라서 피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성숙한 수치심도 가능하다. 자신이 비판적 성찰을 거쳐 받아들인 가치에 기초한 자율적 수치심은 성숙하고 바람직한 수치심이다. 처음에는 타율적으로 사회화된 가치이더라도, 이후 행위자 자신이 자율적으로 수용한 가치라면 그런 가치에 기초한 수치심도 자율적인 것이다. (Flanagan, 2021: 138, 144, 225-6 등; Teroni & Bruun, 2011: 239)
- 수치심이 잘못된 가치 기준에 기초한 것이라면 그것은 물론 문제다(eg. 인종이나 성적지향이나 영어발음을 이유로 수치심을 주면 안 됨). 하지만 올바른 가치 기준에 기초한 성숙한 수치심은 바람직한 것이다. 문제는 수치심 자체가 아니라 무엇에 대한 수치심인지다. 적절한 대상에 관련되는 수치심은 좋은 것이다. (Flanagan, 2021)
- 흔히 죄책감(guilt)이 구체적 행위에 관련하며 도덕적 시정과 개선을 촉진하는 반면, 수치심은 성향이나 사람 전체에 관련하며 자기혐오("나는 실패자야"), 자아파괴, 우울, 폭력과 연결된다고 말해진다. 하지만 일반적인 용례상 수치심 역시 구체적 행위에도 관련하며, 도덕적 개선을 촉진하는 건설적인 것일 수 있다. 나아가 수치심이 사람 전체에 관련할 수 있다는 점은 더 포괄적인 도덕적 평가와 개선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장점이다. 또한 수치심이 반드시 자기혐오와 폭력 등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 그런 연결성을 도출한 경험연구들은 WEIRD(서구의, 교육받은, 산업화된, 부유한, 민주주의) 집단의 편견을 반영하는 등 연구설계상 중대한 결함이 있다. (Flanagan, 2021: 139, 161, 176-8; Mason, 2010: 420; Teroni & Bruun, 2011)
- 누스바움(Nussbaum, 2004)은 수치심이 원초적 욕구 좌절에서 기원한다는 정신분석학 연구 결과를 근거로 수치심을 비판하는데(전능하고 완전한 존재이기를 원하는 나르시시즘적 유아가 자신의 유한성과 무력함을 깨달으면서 발생하는 감정인 '원초적 수치'가 우리 삶에서 광범위한 영향을 준다고 설명), 이러한 설명은 반증불가능성의 문제에 봉착하며, 실제 유아의 경험과 우리의 일상적 수치심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Flanagan, 2021: 163-171). 정신분석 이론의 지지자는 어떤 증거를 유아가 자신이 전능하다고 믿는 나르시시스트라는 주장의 반대 증거로 받아들일 것인가? 자궁 속에서 아이가 지복을 누렸는지 어떻게 아는가? 아기들이 일체의 욕구나 기억을 갖기는 하는지조차 불분명한데, 전능함의 기억이나 전능함에 대한 욕구를 타고나는지 어떻게 아는가? 나르시시즘적 환상에 빠져 있다는 주장은 관찰이 아닌 전적으로 이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심리학과나 신경과학과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수치심을 그 발생 기원에 근거하여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것은 발생학적 오류(genetic fallacy)를 범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감정이 전능함에 대한 욕구의 좌절과 같은 문제적인 기원에서 유래했다고 해서 그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결론이 입증되지는 않는다.]

3. 수치심의 위험성과 대안: Kekes(1988), Baron(2018) 등의 수치심 비판
-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인격적 이상을 갖지 않는 것은 물론 문제다. 하지만 인격적 이상을 가지는 것이 반드시 수치심을 요구하지는 않으며(Kekes, 1988; Baron, 2018), 수치심은 오히려 인격적 이상 추구와 자기 개선을 방해할 위험이 있다.
- 수치심은 자기존중감 상실과 자아의 약화를 가져오고(Kekes, 1988: 285. 293), 가정폭력 피해자 및 성폭력 생존자들이 신고를 꺼리는 데서 나타나듯이 우리를 숨고 싶게 만들며(Baron, 2018: 724), 도덕적 자기 개선보다는 단지 자기혐오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Baron, 2018: 726).
- 나아가 수치심의 장점들조차 다른 대안을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수치심은 불필요하다. 수치심이 자신의 도덕적 실패에 대한 인지, 적절한 반응, 사전 예방, 사후 개선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역할은 수치심뿐만 아니라 진지한 후회와 분노 및 개선하려는 다짐과 노력(Kekes, 1988: 292; Baron, 2018:728), 또는 좋은 삶과 인격적 이상에의 열망(Kekes, 1988: 293-4; Baron, 2018: 730) 등이 수행할 수 있다.
- 도덕적 실패에 대해 부끄러울 줄 모르면(후안무치하면; shameless) 안 된다는 흔한 비난의 말에는 일리가 있지만, 그 말은 많은 경우 무엇보다도 그런 행동을 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내 생각에는: 그것이 그른 행위라는 가치 기준을 공유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혹은 똑같은 행동에 대해서라도 더 적절한 태도를 요구하는 경우일지라도, 꼭 수치심이 아니라 후회와 개선 의지 등 다른 방식으로도 그 요구를 충족할 수 있다(Baron, 2018:727-8).

4. 종합 및 내 견해: 바람직한 가치 추구가 관건이며, 이를 위해 현실적으로 다양한 방편이 필요
- 수치심을 옹호하는 입장이든 비판하는 입장이든, 바람직한 인격적 이상을 견지하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개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핵심 전제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바람직한 가치 추구가 관건인 가운데, 그것이 성숙한 수치심을 통해 도모되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이상에의 열망 등 다른 방식으로 도모되는 것이 나은지가 문제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 수치심 비판자들은 수치심의 위험성과 다른 대안의 존재를 근거로 수치심 일체를 경계하고 다른 방식으로 바람직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제기하는 수치심의 위험성은 미성숙한 수치심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며, 미성숙한 수치심은 느끼지 않고 오직 성숙한 수치심만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 보인다. 그런 사람의 수치심이라면, 바람직한 가치 추구를 위한 다른 대안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할 필요가 없다. 성숙한 수치심과 이상에의 열망은 모두 바람직한 가치 추구를 위한 훌륭한 수단인 것으로 보인다.
- 하지만 두 가지 수단은 모두 상당한 도덕적 성숙을 필요로 한다. 다양한 도덕적 수준에 있는 현실의 인간들이 당장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고치도록 하려면 타율적이고 위험한 수치심이라도 불가피한 방편으로서 활용해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들이 성숙한 수치심을 느끼는 능력을 계발하거나 진정한 도덕적 이상에 대한 열망을 갖기까지 기다려줄 수 없을 수 있다. 부끄럽게 만들지 않으면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개선할 가망이 전혀 없는 상태로 두는 것보다는, 미성숙한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 한편 바람직한 가치 추구가 중요하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전제되는 만큼, 바람직한 가치 추구를 방해하는 미성숙한 수치심을 경계할 필요성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플래너건(Flanagan, 2021: 132 등)은 우리가 (성숙한)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탄식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리는 (미성숙한) 부끄러움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문제의식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또래들의 시선이나 사회의 시선에 의해 외모, 성적, 거주지 등에 대한 다양한 부당한 수치심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이 또한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미성숙한 수치심을 경계하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라면, 바람직한 가치 추구를 위해 수치심을 이용하려 할 때 우리는 항상 미성숙한 수치심의 위험을 인지하고 순전히 성숙한 수치심만이 유발될 수 있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수치심뿐만 아니라 도덕적 이상 등 다른 다양한 심리적 자원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참고문헌: 22-2 응용윤리연구(엄성우 교수님) 리딩리스트에서 내 흥미 위주로 선별
Baron, M. (2018). Shame and shamelessness. Philosophia, 46, 721-731.
Flanagan, O. (2021). Part II. Shame. In How to Do Things with Emotions: The Morality of Anger and Shame Across Cultures(pp.131-237). Princeton University Press. [★최근에 나왔고, 종합적임. 누스바움 깔끔하게 비판.]
Kekes, J. (1988). Shame and moral progress. Midwest Studies in Philosophy, 13, 282-296. [★재미있었음. 키크스 더 찾아볼 의향 있음.]
Mason, M. (2010). On shamelessness. Philosophical Papers, 39(3), 401-425.
Nussbaum, M. C. (2004). Hiding from Humanity: Disgust, Shame, and the Law. Princeton University Press. (4-6장) [☆재미없었음.]